소아마비 엄마, 휠체어 민 아들 “새해 첫날 소원 이뤘어요”

입력 2024-01-02 00:03 수정 2024-01-02 00:31
휠체어를 탄 정혜선씨가 1일 오전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열린 ‘2024년 새해 해돋이 러닝’에서 아들 김영빈군의 도움을 받으며 힘차게 달리고 있다. 권현구 기자

“아들 덕분에 새해 첫날부터 소원을 이뤘어요.”

2024년 첫해가 뜨기 전인 1일 새벽 정혜선(58)씨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아들 김영빈(19)군과 서울 반포한강공원을 찾았다. 정씨는 소아마비로 평생 달리기를 해본 적이 없다. 한부모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2024년 새해 해돋이 러닝’이 열린다는 소식에 아들과 함께 첫 도전에 나섰다.

김군은 자신의 외투를 벗어 엄마를 감싼 뒤 휠체어를 힘껏 밀었다. 정씨가 평생 처음 느껴보는 속도감이었다. 엄마와 아들은 “춥지 않아?” “안 힘들어?” 서로를 걱정하며 잠수교를 건너 한강변을 거침없이 내달렸다. 반환점을 돌 무렵 새해 첫날을 밝히는 해가 떠올랐다. 정씨 모자는 이날 왕복 5㎞에 이르는 코스를 완주하는 데 성공했다. 정씨는 “새해 첫날부터 아들 덕분에 평생소원을 이뤘다. 아들이 지금처럼만 잘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씨는 8년 전부터 혼자 아들을 키워왔다. 어리기만 하던 아들이 어느덧 커서 엄마의 든든한 다리가 돼 준 것이다.

또 다른 한부모가정인 차재심(63)씨는 두 아들과 함께 동참했다. 모자는 10㎞ 코스 완주를 목표로 출발했다. 60대지만 차씨는 완주를 자신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들들을 위해 이전에도 마라톤 10㎞ 완주를 하고, 독도를 방문하는 등 전국을 안 돌아다닌 곳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차씨는 반환점을 돌고 난 뒤 점점 대열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만 돌아가자’는 주변 만류에도 차씨는 자신만의 페이스로 걸음을 계속 내디뎠다. 목표했던 10㎞를 못 뛰고 7㎞ 지점에서 중단했다. 대신 차씨는 완주를 마친 두 아들의 마중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 함께 도착점을 밟았다. 차씨는 “등산도 하고 관리도 열심히 하지만 해가 바뀔수록 힘에 부친다”며 “그래도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운동이라 내가 힘들더라도 계속 같이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홀로 연년생 남매를 키우는 이연경(45)씨는 발목이 좋지 않아 달리지는 못했지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자녀들의 안녕을 기원했다. 첫째 아들은 수년 전 사고로 걷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씨는 “아이가 꼭 다시 걸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며 “내년에는 함께 와서 같이 달리고 싶다”고 했다.

가수 션이 주최한 이날 행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열렸다. 한부모가정뿐 아니라 축구 국가대표 출신인 이영표·조원희 선수, 배우 임시완 외에 시민 200여명이 참여했다. 참가비 전액은 대한한부모협회 도담도담에 기부된다.

시민 참가자들은 한부모가정이 따뜻한 새해를 맞을 수 있도록 응원의 목소리를 건넸다. 김종근(51)씨는 “보육원에서 오랫동안 봉사해 한부모가정이 마주한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좋은 취지의 행사라 동참했다”며 “새해엔 우리 사회가 한부모가정을 편견 없이 바라보며 도움의 손길을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