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덕분에 새해 첫날부터 소원을 이뤘어요.”
2024년 첫해가 뜨기 전인 1일 새벽 정혜선(58)씨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아들 김영빈(19)군과 서울 반포한강공원을 찾았다. 정씨는 소아마비로 평생 달리기를 해본 적이 없다. 한부모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2024년 새해 해돋이 러닝’이 열린다는 소식에 아들과 함께 첫 도전에 나섰다.
김군은 자신의 외투를 벗어 엄마를 감싼 뒤 휠체어를 힘껏 밀었다. 정씨가 평생 처음 느껴보는 속도감이었다. 엄마와 아들은 “춥지 않아?” “안 힘들어?” 서로를 걱정하며 잠수교를 건너 한강변을 거침없이 내달렸다. 반환점을 돌 무렵 새해 첫날을 밝히는 해가 떠올랐다. 정씨 모자는 이날 왕복 5㎞에 이르는 코스를 완주하는 데 성공했다. 정씨는 “새해 첫날부터 아들 덕분에 평생소원을 이뤘다. 아들이 지금처럼만 잘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씨는 8년 전부터 혼자 아들을 키워왔다. 어리기만 하던 아들이 어느덧 커서 엄마의 든든한 다리가 돼 준 것이다.
또 다른 한부모가정인 차재심(63)씨는 두 아들과 함께 동참했다. 모자는 10㎞ 코스 완주를 목표로 출발했다. 60대지만 차씨는 완주를 자신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들들을 위해 이전에도 마라톤 10㎞ 완주를 하고, 독도를 방문하는 등 전국을 안 돌아다닌 곳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차씨는 반환점을 돌고 난 뒤 점점 대열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만 돌아가자’는 주변 만류에도 차씨는 자신만의 페이스로 걸음을 계속 내디뎠다. 목표했던 10㎞를 못 뛰고 7㎞ 지점에서 중단했다. 대신 차씨는 완주를 마친 두 아들의 마중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 함께 도착점을 밟았다. 차씨는 “등산도 하고 관리도 열심히 하지만 해가 바뀔수록 힘에 부친다”며 “그래도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운동이라 내가 힘들더라도 계속 같이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홀로 연년생 남매를 키우는 이연경(45)씨는 발목이 좋지 않아 달리지는 못했지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자녀들의 안녕을 기원했다. 첫째 아들은 수년 전 사고로 걷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씨는 “아이가 꼭 다시 걸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며 “내년에는 함께 와서 같이 달리고 싶다”고 했다.
가수 션이 주최한 이날 행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열렸다. 한부모가정뿐 아니라 축구 국가대표 출신인 이영표·조원희 선수, 배우 임시완 외에 시민 200여명이 참여했다. 참가비 전액은 대한한부모협회 도담도담에 기부된다.
시민 참가자들은 한부모가정이 따뜻한 새해를 맞을 수 있도록 응원의 목소리를 건넸다. 김종근(51)씨는 “보육원에서 오랫동안 봉사해 한부모가정이 마주한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좋은 취지의 행사라 동참했다”며 “새해엔 우리 사회가 한부모가정을 편견 없이 바라보며 도움의 손길을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