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대기업에서 20년 근속한 40대 후반 김모씨는 부장도 팀장도 아니다. 그는 평직원이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부장과 팀장이 있지만 회사 생활에 만족한다. 그도 한때는 ‘사내 정치’도 하고 직급 높아지는 것에만 신경 쓴 적이 있다. 그런 압박감에 힘들어하던 그는 삶의 태도를 바꿨다. 김씨는 승진 필수 요건인 어학 점수를 일부러 따지 않고 필수 교육도 수료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승진 대상자에서 배제되는 쪽을 택했다.
대기업에서 임원 달기를 포기하고 ‘만년부장’으로 남으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상무포기부장’(상포부) ‘팀장포기차장’(팀포차)을 주위에서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A대기업 관계자는 31일 “50대 부장급 직원이 수두룩하다”며 “이들의 최종 목표는 임원 승진이 아니라 60세 정년까지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나이 든 직원’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2022년 말 기준 40세 이상 직원 수가 7만5552명으로 2020년(5만6380명)에 비해 약 34% 늘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에서 일하는 50세 이상 직원 역시 1398명에서 2551명으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
실제 대기업에서 부서장을 맡을 때의 장점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권한은 줄고 업무량과 책임만 커지면서 ‘리더 포비아’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전적인 보상도 기대에 못 미친다. B대기업 팀장은 “온갖 회의에 끌려다니면서 부서 업무를 도맡고 임원과 팀원 사이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데도 보직 없는 동기와 급여 차이는 거의 없다”면서 “승진한 지 1년 됐는데 솔직히 팀장을 더 하고 싶지 않다”고 토로했다.
직급 통폐합으로 승진에 대한 동기부여가 예년만 못한 것도 요인이다. 대기업은 기존 사원-대리-과·차장-부장 체계에서 선임과 수석, 매니저와 책임매니저 등으로 직급을 단순화하는 추세다. C그룹 관계자는 “사원을 제외하고 같은 호칭으로 불리다 보니 ‘나이 먹고 승진도 못 했다’는 눈치 볼 필요가 없어졌고 굳이 힘든 일을 떠안으려고 나서는 분위기도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