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일본은 실버 민주주의(Silver Democracy)가 세대 갈등과 모순을 지칭하는 용어로 주목받고 있다. 인구 비중이 높은 노인들의 선거 영향력이 커지면서 고령층 중심의 정책이 추진되고, 개혁이 늦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일본인 평균 수명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도 현재 65세인 연금 지급 연령을 미국·독일(67세) 이상으로 늦추거나 수령액을 억제하자는 논의가 지지부진한 게 사례다. 실버 민주주의는 세대 간 불공정 이슈를 심화시키고, 청년 세대의 무기력증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낮춰 젊은층 투표를 유도하고, 고령자도 75세 정도까지 일하며 노후를 각자 책임지자는 주장이 나온다.
우리도 내년 총선에서 60대 이상 고령 유권자가 30대 이하 유권자 비중을 처음 넘어선다. 지난 10월 말 기준 60세 이상 유권자는 전체의 31.4%로 39세 이하(31.1%)를 앞섰다. 노인층의 영향력이 막강한 실버 민주주의 시대에 진입하는 셈이다.
우리 정치권엔 세대 교체 요구가 거세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창당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의 대부분 정치인들은 길어야 10년 이상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저는 30년 뒤에도 살아서 평가받을 확률이 높다. 누가 더 진실하고 절박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세대 교체’를 내걸고 비대위원 인선을 했다. 비대위원 평균 연령을 43세로 크게 낮추면서 ‘86 운동권’ 세력과 차별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민경우 비대위원은 지난 10월 17일 토크콘서트에서 “지금 가장 최대의 비극은 노인네들이 너무 오래 산다는 것이다. 빨리빨리 돌아가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은경 전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도 지난 7월 노인 폄하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다. 앞으로 우리도 실버 민주주의가 심화할텐데, 세대 갈등을 조장해 표만 얻으려는 구태로는 후진 정치를 바꿀 수 없다. 세대 교체의 허울만 쓴 정치인들은 결국 그 밥에 그 나물이다.
노석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