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먹고 쭉쭉 뺀다

입력 2023-12-30 04:09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최근 체중을 약 40㎏ 감량한 비결로 비만 치료제를 꼽았다. 윈프리는 지난 13일 미국 잡지 ‘피플’과의 인터뷰에서 “체중을 관리하기 위해 의학적으로 승인된 처방이 있다는 사실은 구원이자 선물로 느껴진다”며 “이는 숨기거나 놀림받을 거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비만은 질병일 뿐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소셜미디어에 “간헐적 단식과 비만 치료제 ‘위고비’로 약 13㎏을 감량했다”고 소개했다. 미국 방송인 킴 카다시안도 지난해 패션 행사 ‘멧 갈라’에서 매릴린 먼로의 의상을 입기 위해 위고비로 7㎏을 줄였다고 언급했다. 소셜미디어 틱톡에서는 ‘#오젬픽(Ozempic)’이라는 해시태그가 13억건이나 발견됐다. 오젬픽은 위고비와 같은 성분의 당뇨병 치료제다. 위고비와 오젬픽은 ‘꿈의 비만 치료제’로 불리며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올해의 인물, 올해의 혁신

지난 19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위고비와 오젬픽을 개발한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의 라르스 프루에르가르드 예르겐센(사진) CEO를 ‘2023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FT는 “노보노디스크는 비만 치료의 판도를 최초로 바꾼 위고비와 오젬픽을 개발한 회사”라며 “예르겐센은 의료뿐만 아니라 사회, 공공재정, 식품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업적 혁신을 개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는 ‘2023년 올해의 혁신’으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유사체’를 꼽았다. GLP-1 유사체는 오젬픽과 위고비의 주성분 물질이다. 사이언스는 “GLP-1은 비만 치료제 개발의 안타까운 역사에 새 희망을 솟아나게 했다”며 “GLP-1은 비만을 단순한 개인 의지의 실패가 아니라 생물학에 뿌리를 둔 만성 질환이라는 인식도 심어줬다”고 설명했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도 GLP-1 초기 합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스베틀라나 모이소프 미국 록펠러대 교수를 ‘올해의 과학자 10명’에 포함시켰다.

1980년대 발견된 GLP-1은 밥을 먹으면 사람의 장에서 나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전 세계 인슐린 시장의 약 45%를 점유하는 노보노디스크는 GLP-1 수용체 작용제인 ‘빅토자’와 오젬픽을 잇따라 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했다. 또 실험 과정에서 GLP-1이 적은 음식 섭취로도 포만감을 길게 느끼게 해줘 체중 감소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노보노디스크는 2018년 오젬픽을 비만 치료제로 사용하는 임상시험을 시작해 2021년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동일한 성분을 비만 치료제로 판매하도록 승인받았다. 이 비만 치료제는 위고비로 명명됐다.


위고비와 오젬픽은 덴마크와 노르웨이, 독일, 미국에서 판매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이언스에 따르면 올해 미국 인구의 1.7%가 위고비나 오젬픽을 처방받았다. 유럽의약품청(EMA)은 지난달 의료 전문가들에게 서한을 보내 올 연말이 다가올수록 두 약물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위고비와 오젬픽의 흥행에 힘입어 노보노디스크의 매출과 시장가치는 올 들어 급격하게 성장했다. 현재 덴마크 경제성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과학계에선 위고비와 오젬픽이 심장병, 알코올 중독, 다낭성난소증후군 등 다양한 질환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지난 8월 위고비와 오젬픽이 과체중 성인의 심혈관 질환 개선에 효과가 있다는 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비만 전문가인 파티마 코디 스탠퍼드 박사는 두 약에 대해 “고혈압과 신장병, 지방간, 수면무호흡증 등의 치료의 필요성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업계의 새 먹거리

다른 글로벌 제약사들도 앞다퉈 비만 치료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뒤 매출이 크게 하락한 제약업계가 새로운 먹거리로 비만 치료제에 주목하는 것이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의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는 지난달 만성 체중 관리를 위한 치료제로 FDA의 허가를 받았다. 위고비처럼 GLP-1 계열 약인 젭바운드는 임상 3상에서 체중이 105㎏인 성인에게 84주간 투여한 결과 29.2㎏이나 줄어드는 탁월한 감량 효과를 보이기도 했다.

스위스 제약사 로슈는 이달 초 비만 치료제 개발업체 ‘카못 테라퓨틱스’를 27억 달러에 인수하며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는 경구용 GLP-1 비만 치료제에 대한 연구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일각에선 위고비와 오젬픽 등의 부작용이 완전히 확인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약 기능을 과장하는 광고가 소비자 판단을 저해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비만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무수히 많고, 이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손실도 막대한 상황에서 비만 치료제는 큰 희망으로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인구의 약 42%가 비만이며, 이로 인해 연간 약 1730억 달러의 비용이 지출되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선 2019년 기준 전체 인구의 약 17%가 비만이고 36%가 과체중이다.

예르겐센 CEO는 “사회와 함께 성공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며 “우리는 인구 노령화와 만성 질환 등 거대한 사회문제에 대한 부분적 해결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