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계약갱신 거부했다 대법서 패소… “진정성 증명돼야”

입력 2023-12-27 00:03 수정 2023-12-27 00:03
동계 휴정기에 들어간 서울중앙지방법원이 26일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다수 법원은 이날부터 다음 달 5일까지 휴정한다. 뉴시스

실거주를 이유로 임대차 계약 갱신을 거부한 집주인과 세입자의 소송전에서 실거주 의사를 입증하지 못한 집주인 손을 들어준 원심 판단은 잘못됐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실거주 의사를 증명할 책임은 집주인에게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법원은 어떻게 진위를 따져야 하는지 기준을 제시한 첫 판결이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집주인 A씨가 세입자 B씨 부부를 상대로 낸 건물 인도 청구 소송에서 A씨 손을 들어준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A씨는 2019년 1월 자신이 소유한 서울 서초구의 아파트를 B씨 부부에게 세 놨다. 보증금 6억3000만원에 그해 3월부터 2021년 3월까지 2년간 거주하는 조건이었다.

계약 만료를 3개월 앞둔 2020년 12월 A씨는 실거주 계획을 B씨 부부에게 알리며 집을 빼달라고 했다. 코로나로 사업이 어려워져 남편이 소유 중인 서울의 다른 아파트를 팔고 자녀들까지 전부 서초구 아파트로 들어가 살려고 한다는 이유를 댔다.

B씨 부부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근거로 계약 갱신을 요구했다. 하지만 A씨는 해당 법의 ‘임대인과 직계존비속이 실거주하려는 경우 갱신을 거부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들어 재차 거부했다. B씨 부부는 나가지 않았고, A씨는 집을 비우라는 소송으로 맞섰다.

1심은 “실거주 계획이 과연 진실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면서도 집주인 손을 들어줬다. 소송 대상인 아파트를 다른 사람에게 임대·매도하려 하는 등 실거주 계획과 명백히 모순되는 행위를 한 사정이 드러나지 않은 이상 실거주를 사유로 한 갱신 거절은 적법하다고 했다. B씨 부부가 항소했지만 2심도 A씨 승소 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A씨는 애초 B씨 부부에게는 남편·자녀들과 실거주할 계획이라고 했다가 소송을 낸 이후 아픈 노부모가 들어와 살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대법원은 “실거주 의사를 증명할 책임은 임대인에게 있다”며 “A씨는 실거주 사유와 관련해 말이 바뀐 이유에 대해 합리적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A씨는 교육 문제로 자녀들과 서울 아닌 지역에 살고 있었는데, B씨 부부에게 ‘지역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오기 위해 남편 아파트를 급매로 처분한다’고도 했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서도 “A씨와 자녀들이 지역 생활 청산을 위해 전학이나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정도 없고, A씨 배우자는 급매로 처분하겠다던 아파트에 여전히 거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법원은 “집주인의 실거주 의사가 꾸며진 게 아닌 진정하다는 점이 통상적으로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증명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법원은 임대인 가족의 주거 상황, 직장·학교 등 사회적 환경, 실거주 의사를 갖게 된 경위, 실거주를 위한 이사 준비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실거주 의사를 판단하는 방법을 최초로 명시적으로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