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피해자들은 “조금이라도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9부(재판장 한정석)는 21일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2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원고들에게 총 145억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수용 기간 1년당 8000만원씩’을 기준으로 피해자들이 각자 수용된 기간만큼 계산해 피해 금액을 산정했다. 인정된 손해배상금은 1인당 적게는 8000만원, 많게는 11억2000만원으로 정해졌다.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강제수용돼 고통을 겪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을 원고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운을 뗐다. 이어 “피고 대한민국은 부랑인 신고·단속 등에 관한 내무부 훈령으로 원고들을 단속하고 강제수용했다”며 “이 훈령은 법률유보·명확성·과잉금지·적법절차·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해 위헌적이고 위법하므로, 원고들이 강제수용된 것도 위법한 조치”라고 판단했다.
또 “원고들은 형제복지원에서 감금 수용돼 구타 등 가혹 행위, 강제노역 등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공권력이 적극 개입하거나 공권력의 허가·지원 묵인하에 장기간 이뤄져 위법성 정도가 매우 크고 다시는 유사한 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할 필요가 크다”고 했다. 정부의 소멸시효 도과 주장에 대해선 “이 사건은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고가 끝나자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본 피해자들은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며 허리를 숙였다. 피해자 이채식(54)씨는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판결이 나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며 “제가 당한 일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법원에서 인정해주니 만족한다”고 말했다. 다른 피해자 강호야(58)씨는 “우리가 일차적으로 판결을 받았으니 2차, 3차로 소송을 진행하는 분들도 순조롭게 판결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60년 7월부터 1992년 8월까지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민간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해 인권 침해를 저지른 사건이다. 1975~1988년 형제복지원 수용자 중 확인된 사망자만 657명에 이른다. 2기 진실 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해 8월 공식 사과와 피해 복구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