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 불온하지만… 사실적인 소녀 이야기

입력 2023-12-21 18:49 수정 2023-12-21 19:01

단편소설 한 편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위픽’ 시리즈의 41번째 책으로 안담의 ‘소녀는 따로 자란다’가 나왔다. 시집 판형에 본문이 54쪽에 불과해 1시간 안에 다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읽고 나서도 꽤 오래 책을 놓지 못할 수 있다. 낯설고 강렬하다. 예컨대, “그렇게 5학년은 서로가 역겹다는 듯 고개를 돌리면서, 그리고 간절하게 곁눈질하면서, 갑자기 지독하게들 사귀어댄다” 같은 문장들.

“나를 곁에 두길 즐겼던 여자애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해서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여자애들이 경험하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이것이 전형적인 소녀 이야기로 흐르지 않는 것은 여자애들의 여자 되기 연습을 묘사하기 때문이고, 화자인 ‘나’가 꽤나 조숙한 소녀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애도 아니고 여자애도 아닌 것 같아서 곤욕스러운 여자애이다. 아이도 어른도 아니어서 이미 많은 걸 아는 소녀이기도 하고, 모르는 걸 간절히 알고 싶어하는 소녀이기도 하다. ‘나’는 “팔짱을 끼는 여자애들은 잔망 떠는 연습을 내게 다 한 뒤에 진짜로 좋아하는 남자에게 선보이러 떠난다는 걸”, 팔짱을 낄 때는 “가슴을 꼭 붙이는 거”라는 걸 안다. 그리고 “나도, 나는 예쁘냐고” 묻고 싶고, “너무 많은 단어를 알고 있다는 것은 나중에 희망이 되기도 하는지” “바깥의 세상에는 다른 아름다운 것들이 많은지” 알고 싶어한다.

이 소설은 소녀 이야기들이 배제해온 여자아이의 섹슈얼리티 문제를 섬세하게 다룬다. 또 여자가 무엇인지 남자가 무엇인지 어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던 시절의 혼란과 갈증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렇게 낯설고 불온하지만 사실적인 소녀 이야기가 탄생했다.

이 소설은 안담의 첫 소설이다. 그는 등단한 적이 없으며, 무늬글방을 운영하고, 연극 무대에도 선다. 활동가들을 초대해 식탁에서 나눈 대화를 담은 책 ‘엄살원’(공저)을 썼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