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반중매체’ 사주 보안법 재판 시작… 최고 종신형 가능성

입력 2023-12-19 04:06
빈과일보 사주 지미 라이가 2020년 6월 홍콩에서 AFP통신과 인터뷰하는 모습. 라이는 같은 해 12월 구속 기소됐다. AFP연합뉴스

홍콩의 반중 미디어 재벌 지미 라이(76)에 대한 국가보안법 재판이 18일 시작됐다. 그는 중국이 제정한 홍콩 국가보안법상 외국 세력과의 결탁 혐의로 2020년 8월 체포돼 그해 12월 구속 기소됐다. 3년 만에 열리는 이번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최고 종신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라이는 이날 오전 8시쯤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으로 웨스트 카오룽 법원에 도착했다. 그는 경찰의 호송을 받으며 법정에 들어서면서 지지자들을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천주교 홍콩교구장을 지낸 조지프 쩐 추기경과 홍콩 주재 각국 총영사관 대표들이 재판을 방청했다.

홍콩 검찰은 라이가 본인 소유의 빈과일보를 이용해 홍콩과 중국 정부에 대한 비방을 일삼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당초 라이의 보안법 재판은 지난해 12월 열릴 예정이었으나 외국인 변호사 선임 문제로 1년 연기됐다. 홍콩에서는 그간 외국인 변호사 선임이 허용됐고 중대 범죄에 대해선 배심원 재판이 진행됐지만 보안법 시행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이번 재판은 배심원 없이 친중 성향의 홍콩 행정장관이 지명한 판사 3명이 맡았다. 홍콩 경찰은 대테러 부대와 폭탄 처리반 등 경찰 1000명을 법원 주변에 배치하고 순찰을 강화했다.

CNN은 “최소 80일 이상 진행될 이번 재판은 1997년 홍콩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이후 홍콩 언론계 인사에 대한 가장 주목을 끄는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2020년 6월 말부터 시행된 보안법은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세와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보안법 시행 후 홍콩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중국에 비판적인 기사를 써온 라이는 당국의 타깃이 됐다. 그는 보안법 위반 혐의와 별개로 2019년 불법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 20개월, 빈과일보 사무실을 허가 용도 외 목적으로 사용한 사기 혐의로 징역 69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 설립자로 잘 알려진 그는 1989년 중국의 천안문 시위 유혈 진압에 충격을 받아 언론계에 뛰어들었고 1995년 빈과일보를 창간했다. 2014년 홍콩 우산혁명, 2019년 범죄인 송환법 반대시위에 참여하며 반중 언론인으로 떠올랐다. 빈과일보는 당국의 압박 속에 2021년 6월 24일자 신문 발행을 끝으로 폐간됐다.

이번 재판에 대해 미국과 영국 등은 일제히 우려를 표명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중국의 보안법에 따라 홍콩 민주화 운동가이자 언론 소유주인 라이가 기소된 것을 규탄한다”며 “라이를 비롯해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려다 수감된 모든 이들을 즉시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라이는 반중난항(중국에 반대하고 홍콩을 어지럽힌) 사건의 기획자이자 참여자이고 반중 세력의 대리인이자 선두 주자”라며 서방의 석방 요구를 일축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