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선실세… 기관장 자리 1억” 80명이 이력서 보내

입력 2023-12-19 04:03

윤석열 대통령의 ‘비선실세’를 사칭하며 공공기관장이나 공기업 임원 자리를 주겠다고 속여 거액을 뜯어낸 일당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이들은 윤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것은 물론 일부 피해자가 윤 대통령 취임식 귀빈석에 앉을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는 사기·사기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58)에게 최근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공범 B씨(56)와 C씨(56)는 각각 징역 2년,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대통령 선거가 있던 지난해 3월부터 그해 9월까지 공공기관장이나 공기업 임원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12명으로부터 2억75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검찰에 따르면 B씨와 C씨는 “A씨가 대통령 비선실세로서 공공기관장과 공기업 임원을 비밀리에 검증해 추천하는 일을 맡고 있다”며 피해자들을 끌어모았다. A씨는 이력서를 보낸 이들을 상대로 면접도 진행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경기도시개발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마사회 등을 취업처로 거론하며 사장 자리는 1억원, 임원 자리는 5000만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일당의 거짓말에 속아 실제 돈을 입금한 피해자는 12명이지만, 이메일로 이력서를 보낸 이들은 8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윤 대통령 취임식 초대권을 제공하거나, 본인들이 취임식에 직접 참석하는 모습을 보이며 피해자들을 속인 것이다.

박 판사는 “피고인들의 행위는 피해자들이 ‘비선실세를 통해 채용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A씨 등은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윤 대통령 지지 정치단체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들에게 실제 공기업·공공기관 임용에 영향력을 행사할 권한이나 능력은 없었다.

박 판사는 “피해자들에게 재산상 손해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 이익을 위해 운영돼야 할 공공기관 채용절차에 대한 신뢰도 무너뜨렸다”며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