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용인호(가명·29)씨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8년간 골방에서 고립된 채 은둔 생활을 이어왔던 그는 자신 앞에 놓인 빚과 중독 문제를 혼자서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하겠다고 여겼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그에게 로뎀나무교회(유병용 목사)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10년 전 용씨가 출석했던 교회였다. 교회 측은 용씨를 올 초 서울 안암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 연결해줬다. 용씨는 이곳을 통해 1년 동안 월세 지원 등 재정적 도움과 함께 또래 소그룹 모임도 주선받았다. 그렇게 고립·은둔 생활을 벗어난 용씨는 지금 사회복지사를 준비하고 있다.
“8년 동안 고립·은둔 생활을 하다 보니 공부를 비롯해 운동과 일 모두 혼자 하는 것에 익숙했어요. 하지만 다른 청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공동체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습니다.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청년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 싶어요.” 지난 11일 서울시가 마련한 ‘서울 고립·은둔 청년 성과 공유회’에서 용씨가 나눈 고백이다.
교회와 지자체의 도움을 받은 용씨의 케이스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이달 초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처음 발표한 ‘고립·은둔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립·은둔생활을 하는 청년 5명 가운데 4명(75.4%)이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고립·은둔청년 10명 중 8명(80.8%) 정도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길 원했지만 ‘정보를 모름’(28.5%) ‘비용부담’(11.9%) ‘지원기관이 없어서’(10.5%) 등의 이유로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을 위한 교회의 역할론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립·은둔 청년이었던 용씨를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주민센터 등에 연결시켜 준 로뎀나무교회 사례가 대표적이다. 용씨 사례를 계기로 이 지역에서는 지자체와 교회가 함께 펼치는 고립·은둔청년 지원 프로젝트 ‘끌어안암’이 올 초부터 운영되고 있다. 이 사업은 청년을 대상으로 벼룩시장과 찾아가는 복지상담소 등을 운영해 도움의 손길이 있음을 알리는 취지의 활동이다. 지역주민들도 함께 주변의 어려운 청년을 발굴하도록 독려해 올 들어서만 40여명의 청년이 상담과 지원을 받았다. 교회의 작은 관심만으로도 고립·은둔 청년을 발굴해 삶의 변화를 이끄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유병용 목사는 1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고립·은둔청년은 다른 나이대와 달리 자신을 감추려 하는 경향이 있기에 발굴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렇기에 교회가 인격·개별적 만남의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 교회가 청년들의 고민과 문제에 관심을 두고 인격적인 만남을 지속한다면 고립·은둔청년의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나들목네트워크 더불어함께교회(유해동 목사)와 작은이들의교회(이찬현 목사)는 고립·은둔청년 지원기관 사단법인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센터장 김옥란)와 손잡고 고립·은둔청년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