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거주하는 허모(49)씨는 2016 년 12월 서귀포 성산에 있는 주상복합건물 내 53호 상가(분양대금 8억9000만원)를 분양받았다. 2년 뒤 완공된 상가를 본 허씨는 깜짝 놀랐다. 상가 출입문 왼쪽과 정중앙에 가로 100㎝, 세로 80㎝ 크기 기둥이 한 개씩 있었다.
시행사인 A사에 항의했지만 도면에 기둥을 뜻하는 ‘□’ 표시가 있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도면에는 해당 표시가 기둥이라는 설명도 없었다. 허씨 남편은 17일 “설계 전문가도 아닌데 그 작은 표시가 기둥인 줄 어떻게 아느냐”며 “그렇게 큰 기둥인줄 알았다면 분양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씨 등은 A사 등을 상대로 계약금 등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졌다. 1심은 도면에 ‘□’ 표시가 있었고 기둥 면적 및 위치가 이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성지용)는 최근 1심을 뒤집고 “분양 계약을 취소하고 시행사가 허씨에게 계약금 89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허씨 옆 52호를 분양받은 강모씨도 일부 승소했다. 피고 측은 불복해 상고했다.
최근 상가 분양 과정에서 사업자가 기둥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았다면 계약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수분양자(부동산을 분양받은 사람)들이 분양 계약 취소 소송을 내 승소하기는 쉽지 않다. 명백하게 소비자를 속였는지, 고지 의무를 위반했는지 등을 법원이 엄격히 따지기 때문이다.
허씨의 소송에서도 허씨를 포함해 원고 11명이 주차 대수, 민가 인접 여부 등 여러 쟁점을 놓고 다퉜지만 2심에서 승소한 것은 기둥 쟁점뿐이다. 재판부는 ‘□’ 표시가 기둥을 의미하는지, 면적이 어느 정도인지 기재가 없었던 점을 고려할 때 고지 의무를 이행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허씨가 계약한 상가는 기둥 때문에 사용가치가 10.7% 하락한다는 감정 결과가 나왔다.
지난달 9일 부산고법 창원재판부에서도 기둥 쟁점 관련 승소 판결이 나왔다. 전모씨는 2016년 10월 경남 창원에 있는 주상복합건물 상가 분양 계약을 맺었다. 완공 후 확인한 상가 내부엔 가로 141㎝, 세로 156㎝ 크기 기둥이 있었고, 전체 면적의 4.6%나 됐다.
1심에서 패소했지만 부산고법 창원재판부 민사2부(재판장 김종기)는 최근 “시행사가 전씨에게 분양대금 9억7900만원과 잔금연체 이자, 등기수수료 등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분양대행사 직원 교육 자료나 도면, 모델하우스에 비치해둔 입체 모형 어디에도 기둥을 의미하는 문구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두 사건을 대리한 법무법인 정향 박건호 변호사는 “시행사 등이 기둥 등 주요 시설물의 존재를 명확히 고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같은 법인 강호석 변호사는 “상가에 영화관이 들어온다는 등의 과장 광고도 법원에서 잘 인정이 안 되는 편인데 기둥 쟁점은 넓게 인정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신지호 기자 p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