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도 없는데 재채기·콧물 주르르… ‘겨울 비염’ 의심

입력 2023-12-18 19:02 수정 2023-12-18 21:18
정도광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알레르기 비염 환자에게 고주파 수술을 하고 있다. 고주파 수술과 설하면역요법의 병행을 통해 비염의 완치가 가능하다. 하나이비인후과병원 제공

날씨가 추워지고 난방이 시작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재채기를 하거나 물 같은 콧물을 흘리고 코가 막혀 숨쉬기 힘들어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열이 나지 않고 전신 통증 등의 증상이 없다면 요즘 유행하는 감기나 독감, 코로나19는 아니다. 이땐 알레르기 비염을 의심해 봐야 한다. 재채기·콧물·코막힘의 3대 증상과 함께 코나 눈이 가렵다면 비염일 가능성은 매우 크다.

비염은 꽃가루가 많이 날리는 봄·가을에 흔히 겪지만 실제로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1년 내내 발병하는 ‘통년성 질병’이다. 통년성 비염은 집먼지진드기, 개·고양이 등 반려동물의 털이나 분비물, 곰팡이, 바퀴벌레 등이 원인(항원)이다.

고려대안암병원 이비인후과 김태훈 교수는 18일 “최근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급증하고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미세먼지·황사 등으로 알레르기 비염 환자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하나이비인후과병원 정도광 원장은 “특히 겨울에는 난방으로 실내 공기가 건조해지기 쉽고 실내외 온도 차가 커서 비염 증상이 악화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빅데이터에 따르면 알레르기 비염 진료 환자는 코로나19 발생 이전에는 매년 증가세가 이어져 2019년 692만여명에 달했다. 코로나 유행 기간에 다소 줄어 지난해 589만명이 병원을 찾았다. 계절별 환자 수를 살펴본 조사(2010~2014년)를 보면 9~10월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11~12월이 차지했다.

알레르기 비염은 생활 속에서 항원 물질을 최대한 멀리하는 회피 요법, 코점막의 염증을 완화하고 점막 민감도를 낮추는 약물 치료, 코막힘 증상이 심하거나 축농증·비중격만곡증이 동반된 경우 수술로 치료한다. 항원을 아주 조금씩 몸에 흡수시켜 면역 관용을 유도함으로써 비염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면역요법도 있다.

근래에는 고주파 수술과 설하(舌下)면역치료의 병행을 통해 고질적인 비염의 완치에 도전하고 있다. 고주파 수술은 콧속 공간인 비강의 측벽에 선반 모양으로 늘어진 콧살(상·중·하 세 겹으로 된 ‘비갑개’) 중 비염이 가장 많이 생기는 하비갑개의 점막에 40~70도 열을 내는 고주파 기기(코블레이터)를 찔러넣어 두꺼운 점막 부피를 줄임으로써 코막힘을 개선한다. 또 열에 의해 점막 아래 점액분비세포와 혈관이 파괴돼 알레르기 물질이 전달되지 않아 재채기나 콧물 증상도 호전된다.

정 원장은 “이전에 쓰이던 전기 소작기나 레이저는 600도의 고열이 나서 수술 시 주변 조직까지 손상되는 부작용이 있었으나 고주파 기기는 이런 문제가 없다. 다만 환자에 따라 일부 출혈 위험이 없지 않으나 수술 후 코 패킹 등으로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주파 비염 수술은 1회로 끝나며 수술 시간은 20~30분 정도다.

고주파 수술 후에는 설하면역요법이 뒤따른다. 알레르기 피부반응 검사를 통해 확인한 환자의 항원 성분을 추출해 만든 약제(알약 혹은 용액)를 혀 밑에 떨어뜨려 2~3분간 머금고 있는다. 약제는 점막을 통해 몸에 흡수되고 면역반응이 유도된다. 결과적으로 항원에 대한 차단 항체가 생겨 코점막이 원인 물질에 둔감해지도록 하는 원리다.

이 치료는 항원이 집먼지진드기(비염 환자의 약 80%)와 꽃가루인 환자만 효과를 볼 수 있다. 매일 같은 시간 공복에 혀 아래에 투약해야 한다. 주로 아침 식사 전에 시행한다. 투약 후에는 손에 묻은 항원이 코·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정 원장은 “설하면역요법은 기존 치료(피하 주사 투입)와 달리 알레르기 물질에 의한 아나필락시스(급성 쇼크) 같은 전신 부작용이 없다. 다만 항원 농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코나 입·귀가 가려울 수 있는데, 일시적 증상으로 곧 좋아진다”고 조언했다. 이 방법을 3~4년 시행하면 치료 중단 후에도 4~5년 효과가 지속된다.

특히 어린이는 비염이 천식으로 발현될 가능성이 큰데, 면역요법으로 치료하면 이를 억제할 수 있다. 또 사람에 따라 항원이 새로 추가되기도 하는데, 면역요법의 경우 약물치료만 받은 환자에 비해 새 항원에 대한 알레르기가 10분의 1로 줄어든다.

고주파 수술 후에 주의할 점이 있다. 수술 후 해당 부위 보호를 위해 코안에 넣었던 패킹용 솜이나 심지를 제거한 뒤 생리식염수로 하루 두 번 콧속을 씻어주면 회복이 빠르다. 완전 회복 후에도 하루 한 번 코를 세척해주면 재발을 막고 다른 코 질환도 예방할 수 있다. 수술 후 2주간은 사우나나 심한 운동을 삼가고 4주간은 수영을 해선 안 된다. 1개월은 비행기 탑승도 자제하는 것이 좋다. 최소 2개월간 금연 및 금주가 권고된다. 정 원장은 “알레르기 비염은 실내외 온도 차, 미세먼지 등 다른 원인에 의해서도 심해질 수 있는 만큼 치료 후에도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