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가는 칼국숫집이 있다. 허름한 골목 안쪽에 있어서 초행길이라면 그냥 지나칠 법하다. 부슬부슬 겨울비가 내리거나, 흐린 날에는 뜨끈한 칼국수만 한 게 없다. 멸치나 바지락을 우려낸 담백하고도 시원한 국물, 콧등에 송송 솟는 땀을 찍어내며 먹는 개운한 맛. 거기다 매콤한 겉절이를 곁들여 먹을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절로 빨라진다.
처음 칼국숫집에 갔을 때 나는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족히 2인분은 될 정도로 양이 많아서 놀랐고, 두 번째는 보리밥 때문이다. 솔직히 주인 할머니 요리 솜씨는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오래 끓여서 칼국수 면발은 퍼졌고, 투박하게 고명으로 얹은 애호박도 굵기가 들쭉날쭉했다. 그런데도 내가 다시 그 집을 찾은 까닭은 보리밥이 생각나서였다.
할머니는 맘껏 가져다 먹을 수 있게 보리밥을 밥통째 내놓았는데, 그 옆에 열무김치, 고추장, 들기름병이 놓여 있었다. 칼국수가 나오기 전, 보리밥에 고추장과 열무를 넣고 석석 비벼 크게 한입 떠먹었다.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탱글탱글한 찰보리밥과 감칠맛 도는 고추장이 입안에서 하모니를 이뤘다. 이 집의 주력 메뉴는 칼국수가 아니라 보리밥이어야 하지 않을까? 보리밥이 맛있다고 하니 할머니가 비법은 ‘매실 고추장’에 있다고 하셨다.
다시 그 집에 갔을 때 나는 면을 적게 달라고 말한 뒤 보리밥을 두 번 가져다 먹었다. 그러니까 보리밥을 먹으러 칼국숫집에 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보리밥을 메뉴에 추가할 계획은 없냐고 넌지시 오지랖을 부렸으나, 할머니는 공사장 인부들이 장부를 대놓고 점심을 먹는데, 양껏 먹으라고 둔 것이지 따로 팔 생각은 없다고 하셨다. 3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칼국숫집. 입구에 구슬로 꿴 주렴이 이마에 닿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편안한 분위기가 좋다. 든든한 속으로 길을 나서면, 올겨울 삭풍도 누긋하게 풀리는 듯하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