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산하 기타 공공기관으로 국내 최대 문화예술 지원 기관이다. 올해는 예술위가 창립된 지 50주년인 해였다.
올 초 임기 3년의 예술위 수장으로 5선(16~20대) 국회의원 출신인 정병국 전 문체부 장관이 취임했다. 당시 문화예술계는 정 위원장 선출에 우려를 표했다. 정 위원장이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자행된 이명박정부에서 장관을 역임했기 때문이다.
정 위원장은 지난 1년간 문화예술에 대한 사회적 후원을 늘리는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예술 행정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정 위원장의 이런 행보는 예술위 안팎에서 예상보다 높은 호평을 받고 있다. 최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정 위원장을 만나 지난 1년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술위 위원장으로 취임한 지 1년이 다 됐다. 지난 1년에 대한 소회는?
“국회의원 시절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예술위로 전환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정부 관여를 최소화하는 구조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예술가 주도 예술위가 막상 정권 바뀔 때마다 정치적 바람을 탄 게 현실이다. 여기 와서 보니 10여 년 전 시스템에 덧칠만 돼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서 개혁에 나섰다. 예술가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만큼 취임 이후 두 달 동안 현장 업무보고만 14차례 받았다. 여기에 전문가 토론을 거쳐 만든 개혁안을 공개한 뒤 다시 의견을 수렴해서 만든 최종안으로 공청회를 4차례 열었다. 지난 1년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예술위의 시스템을 개선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취임사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2003년 모금 중단 후 안정적인 자체 수입원이 없는 문화예술진흥기금을 확대 조성하겠다는 것이었다. 기금 확대와 관련해 지난 1년간 위원장의 행보를 보면 민간 후원을 늘리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제도를 고쳐 기금을 확충하는 것은 국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사회적 후원을 늘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한국의 세계적 위상에 비해 예술에 대한 사회적 후원이 너무 낮다. 게임, 영화, 음악 등 K-콘텐츠의 수출이 늘어날 때 화장품, 식품, 패션 등 소비재 수출이 1.8배 동반 증가했다는 분석 결과도 있지 않나? 그런데, K-콘텐츠의 혜택을 얻는 이들 기업은 문화예술에 재투자하지 않는다. 예술위의 문화예술 후원 기업 인증 제도를 강화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국민 캠페인을 위해 지난 여름 개최한 ‘포레스트 뮤직 페스티벌’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해 후원자를 모으고 있다.
-내년 예술위 예산은 얼마나 되나? 지원 심사와 관련해 최근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문화예술 지원기관에 책임심의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현재 국회에서 최종 확정된 것이 아니라 정부안이긴 하지만 예술위의 2024년 예산은 약 3896억원이다. 2023년의 3845억원보다 약 51억원 증액됐다. 물론 예술위 예산 가운데 국민의 예술향유를 위한 문화누리카드에 2023년 2487억, 2024년 2581억원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번에 단순 개인 및 단체 지원은 지방으로 이양되면서 중앙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유 장관님이 언급하신 책임 심의와 관련해 예술위는 올해 개혁안을 만들면서 이미 포함시켰다. 다만 명칭이 ‘전담 심의제’다. 또한, 심사위원 풀에 누구나 이름을 올리는 기존 방식 대신 전문성 여부를 판단하는 심사위원 검증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심사위원의 경우 지원 심사 이후 예술단체에 피드백까지 주도록 했다.”
-올해는 문예진흥원 시절부터 시작해 예술위가 50주년이 되는 해다. 예술위가 모델로 삼은 영국 예술위원회와 비교할 때 한국의 예술위는 역할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예술위의 역량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 극단적으로 예술위를 문체부의 하청기관으로 표현하기까지 하는데, 예술위가 단순한 예산 집행기관이 안 되려면 아르코 직원들의 전문화가 필요하다. 그러면 정부 공무원들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전담 심의제를 시행하면서 우리 직원들을 포함시켰다. 그래야 예술위의 권위가 생긴다.”
-문화예술계는 블랙리스트 사태가 터진 것은 박근혜정부 시절이지만 그 시발점은 이명박정부라고 본다. 최근 법원 판결도 그렇게 나왔다. 검열과 블랙리스트에 대한 위원장은 생각은?
“블랙리스트는 있어선 안 된다. 다만 이명박정부에서 문체부 장관을 할 때 블랙리스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내 경우 대학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며 투옥까지 됐던 사람이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 문화예술 행정가로서 창작 과정에서 예술가의 가치나 철학이 배제될 수 없지만, 창작물이 예술가의 손을 떠난 뒤엔 소비자인 관객이 판단한다고 본다. 여기에 정치적 이념의 잣대를 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부가 예술 창작에 예산을 지원할 때 어떤 선입견을 품고 접근해선 안 된다는 게 기본적인 입장이다. 다만 예술을 수단화하는 경우에도 표현의 자유라고 인정해줘야 하는지, 어디까지 인정해줘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앞으로 계획은?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에 나가는 등 임기를 채우지 않고 정치인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정치인으로 돌아갈 생각이 있었으면 아예 오지 않았다. 지난 1년간 예술위에서 시작한 일들을 남은 임기 동안 안정화하는 게 정치인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