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언더독

입력 2023-12-14 20:31

이 세계를 네가 구했어.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린다. 폐허가 된 도시에 둘러싸여서, 꿈속의 나는 아름다웠다. 나의 아름다움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였다.

눈을 빼앗길 만한 장면이어서 나는 이 세계와 어울리는 음악을 마련하였다.

화관 속에 두 손을 가슴에 모은 내가 누워 있었고, 살아남은 모든 이들의 행렬로 거리가 잠시 가득 찼다.

나는 어떻게 이 세계를 구했나. 나의 궁금증이 이 세계와 무관하였다.

연인이 내게 입을 맞추며 엄숙하게 사랑을 맹세하였고,

잠들었던 관객이 영화의 결말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듯이, 나는 영문 모를 격정에 휩싸였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 네가 아니야. 내가 꿈속의 나를 향해 소리치자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일제히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행렬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의 격정이 나와 무관하였고, 화관에 누운 내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비로소 이 꿈의 구성 방식을 알 것 같았고,

나는 이 세계에 두고 나가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변혜지 시집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