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의 계절’인 연말이 왔지만 대기업 곳곳에서 푸념의 소리가 들려온다. 배터리 기업 직원들은 벌써 울상이다. 고속 주행하던 성장세가 꺾이면서 성과급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1년 내내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반도체 기업에선 성과급을 아예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역대급’ 실적을 쏘아 올린 자동차업체 직원들만 방긋 웃고 있다.
배터리 3사에선 올해 성과급이 큰 폭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지난해 기본급의 최대 868%를 성과급으로 받았던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은 올해는 ‘성과급 200%’가 나올 수 있다는 소문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직원은 13일 “다양한 성과급 숫자가 언급되는데 지난해보다 적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라며 “사업목표 달성이 쉽지 않았고 내년도 전망이 암울해서 많이 받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 3분기까지 1조825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최대 실적을 찍었다. 지난해 연간 실적(1조2140억원)을 훌쩍 넘겼다. 그럼에도 내년부터 이차전지 성장세가 주춤할 것이라는 예상에 미리 긴축에 돌입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회사 관계자는 “성과급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말 성과급으로 연봉의 30~40%를 받은 삼성SDI 직원들도 이보다 적거나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보고 있다. SK온 직원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말에도 성과급을 받지 못할 전망이다. 올해 누적으로 3분기까지 5630억원의 영업손실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위로금 명목으로 기본급의 200%를 받았는데 올해도 사기 진작 차원에서 비슷한 금액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업계는 성과급을 받을 수 있을지부터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에선 매년 1월 지급하는 초과이익성과급(OPI)이 내년엔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추측까지 나온다. OPI는 연초 세운 목표를 달성한 수준에 따라 초과이익의 20% 한도에서 연봉의 최대 50%까지 지급하는 성과급 제도를 말한다. 지난 3분기까지 누적 12조원 넘는 적자를 기록한 만큼 영업이익을 기반으로 하는 OPI를 받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상·하반기 한 번씩 기본급의 최대 100%까지 받는 목표달성장려급(TAI)도 하반기 25%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지난 상반기에도 25%를 받았다.
SK하이닉스 역시 초과이익분배금(PS) 지급이 어려울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의 10%를 떼어 PS 재원으로 활용한다. 올해 9조원대 적자가 예상되는 만큼 성과급 지급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동차 회사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전기차와 고가 차량 위주 판매로 역대급 실적을 달성한 현대차와 기아는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현대차와 기아 직원들은 지난해 성과급으로 기본급의 ‘300%+800만원’을 받았다. 특별격려금 250만원과 사업 목표달성격려금(기본급의 100%)도 챙겼다. 더 두둑한 보너스를 받을 기회도 잡았다. 최근 성과급 900%를 공약으로 내건 강성 노조가 등장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올해 배전반(배터리·전기차·반도체) 업종 실적이 크게 엇갈렸다”며 “연말 성과급 규모도 큰 차이가 날 것으로 보여 대기업 직원들 간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영 조민아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