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전용대 (8) 최자실 목사 “빚 갚으려면 금요일마다 찬송가 불러라”

입력 2023-12-14 03:04
전용대 목사가 1991년 서울 종로구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가스펠 콘서트에서 찬양하고 있다.

“이 분이 최자실 목사님이라고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늘 남자 목사님만 봐 온 탓에 목사님은 다 남자만 있는 줄 알았다. 목사님에게 당돌하게 아주머니라고 불렀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셨을까.

목사님은 웃으며 물었다. “여기 오기 전엔 뭘 했나?” “저는 밤무대에서 노래했습니다. 다리를 절고부터는 노래를 하고 싶어도 못 했지만….” 목사님은 내 얘길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병이 나은 것에 빚을 갚고 싶다고 했지? 그러면 여기서 찬송가를 불러라.” “무슨 찬송가를 어디에서 부르면 되나요?” “금요일마다 기도원에 와서 찬송가를 부르면 된다.”

조롱하는 사람들 때문에 무대에서 끌어내려지던 내게 그 말씀은 천국에서 내려온 기회 같았다. 너무 기쁜 나머지 목사님께 굉장한 약속을 내뱉고 말았다. “앞으로 10년 동안 찬송가를 부르겠습니다.” “그래? 분명히 10년이라고 했다. 꼭 약속 지켜야 한다.”

얼떨결에 했던 약속이었지만 나는 그 후로 10년간 매주 금요일마다 오산리기도원에서 찬양을 했다. 외국 집회에 다녀오게 되어도 금요일 전에는 돌아와 자리를 지켰다. 그 10년의 약속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것이라고는 그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 부르는 노래와 하나님 앞에서 부르는 노래는 달랐다. 세상은 내 겉모습을 보며 환호했고, 그 겉모습이 보잘것없어지자 내동댕이쳤다. 하지만 하나님은 보잘것없는 절름발이의 노래를 세상 그 어떤 노래보다 기쁘게 들어 주셨다. 날마다 온 힘을 다해 찬양하고 기도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최자실 목사님은 내게 기도방을 하나 마련해주셨다. 덕분에 매일 하나님과 조용한 둘만의 시간을 가지며 기도하는 법도 알게 됐다.

찬양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더 궁금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윤관 목사님과 이런 고민을 나누다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용대야. 신학 공부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니. 성경을 공부하다 보면 네가 궁금해하는 부분을 깨닫게 될 것 같구나.”

목사님 말을 듣고 나니 납득이 됐다. 나는 그길로 신학교에 갈 준비를 했고 이듬해 신학생이 됐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하나님이 더 알고 싶었다. 하지만 무작정 시작한 신학생 생활은 그리 평탄치만은 않았다. 오산리기도원에서의 찬양 사역과 더불어 학교에도 나가야 했기 때문에 늘 24시간이 모자랐다.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오산리기도원뿐 아니라 최자실 목사님을 따라 외부 집회 찬양도 자주 했다. 그러다 보니 숙소로 돌아오면 기진맥진해 바닥에 널브러지기 일쑤였다. 형편도 녹록지 않았다. 어느 날은 학교에 갈 차비가 없어 쓰레기통을 뒤져 토큰(버스표)을 줍기도 했다. 스스로를 향해 한탄했다. ‘전용대, 당장 돈을 벌어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울 판에 이렇게 찬양하면서 공부하는 게 맞냐! 정말 네가 그렇게 목을 매는 하나님이 계신 게 맞기는 한 거냐!’

2학기째를 지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피곤함에 절어 있었는 데도 무언가에 이끌리듯 성경을 폈다. 여느 때와 달리 구절마다 가슴에 와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태어나게 하셨고 왜 절망 속 만신창이가 되어 희망조차 없던 나를 불러 찬양하게 하셨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