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며 파격적인 공약으로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하비에르 밀레이(53)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공식 취임하며 4년 임기를 시작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충격요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경제위기 타개를 위한 개혁을 약속했다. 다만 첫 내각을 온건파 인사들로 꾸리며 자신의 과격한 공약들을 급격히 추진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부에노스아이레스 연방의회에서 퇴임하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으로부터 어깨띠를 넘겨받은 뒤 취임선서를 했다. 이어 의회 앞 광장으로 나가 취임 연설을 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현재보다 더 나쁜 유산을 받아 든 정부는 없다”며 전 정권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아르헨티나는 현재 연간 1만5000%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을 겪을 위험에 직면해 있다”며 “공공부문 재정 조정과 충격요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련의 경제개혁으로 인해 고용이 영향을 받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며 “이는 아르헨티나 재건을 시작하기 전 우리가 마지막으로 삼켜야 할 약”이라고 말했다.
취임식에는 남미 주변국 정상들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이 참석해 밀레이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했다. 한국에서는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이 경축특사로 자리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식 후 정부 부처 장관을 비공개로 임명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여동생인 카리나 밀레이(51)를 비서실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홍보 전문가로 대선 때부터 선거운동을 주도했던 카리나가 정권의 2인자로 떠오른 모양새다. 현지 언론은 친족을 공직에 임명할 수 없도록 한 기존 규정을 폐기하고 카리나를 비서실장에 앉힌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새 내각에는 온건파 인사들이 중용됐다. 우파 마우시리오 마크리 정부(2015~2019년)에서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루이스 카푸토가 경제장관으로 기용됐다. 중앙은행 총재로 임명된 산티아고 바우실리도 마크리 정부 재무장관 출신이다. 지난 10월 대선에서 3위를 차지했던 중도우파 성향의 파트리치아 불리치 전 보안장관은 새 내각의 보안장관으로 다시 기용됐다.
밀레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중앙은행 폐지와 달러화 도입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취임 연설에선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당선 이후 파격적인 공약들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첫 내각을 온건한 인사들로 꾸린 것은 극단적인 여소야대 의회 구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밀레이 대통령이 이끄는 자유전진당의 의석은 하원 257석 중 38석, 상원 72석 중 7석뿐이다. 집권 초반부터 공약 이행을 위한 드라이브를 걸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는 대선 기간에 특유의 ‘거친 입’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당선 후에는 한층 몸을 낮춘 모습이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