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은 11일 취임사에서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갖는데 법원이 이를 지키지 못해 국민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재판 지연’ 해소를 사법부 선결 과제로 꼽았다. 실타래처럼 엉킨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원 구성원 전체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협조를 요청했다.
사법부 신뢰 회복을 역설한 조 대법원장 취임 후 법원에서는 대법원장 공백 사태로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왔다. 조 대법원장은 15일로 예정된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사법부 현안 관련 구체적인 메시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민들이 지금 법원에 절실하게 바라는 목소리를 헤아려볼 때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해 분쟁이 신속히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세심하고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엉켜 있는 문제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구체적인 절차의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재판 제도와 법원 인력 확충 같은 큰 부분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제점을 찾아 함께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은 특히 ‘함께’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취임식에 참석한 한 법관은 “경청하겠다는 말을 많이 한 만큼 내부 기대도 크다”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이 언급한 절차적 부분은 사건 접수 후 첫 기일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 문제, 재판부 기피 신청으로 재판이 장기화된다는 지적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법원에서는 재판 지연 해결을 위해 법관 증원도 필수적이라고 본다.
조 대법원장은 또 “지난날 서슬 퍼런 권력이 겁박할 때 사법부는 국민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했다. 평등의 원칙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빈부 간에 심한 차별을 느끼게 했다”고 자성했다. 또 “불공정하게 처리한 사건이 평생 한 건밖에 없다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다”며 “그 한 건이 사법부 신뢰를 통째로 무너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법관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겠다”며 ‘효율적이면서도 공정한 인사제도’ 마련도 약속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취임사를 직접 썼다고 한다.
이날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은 간소화를 당부한 조 대법원장 뜻에 따라 250여명만 참석했다. 전임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식에는 전국 법원장들을 포함, 600여명이 모였다. 3년6개월 임기를 시작한 조 대법원장은 취임식 내내 표정이 무거웠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하나같이 해결이 어려운 과제들이라 책임감이 막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식 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방명록에 ‘국민의 자유와 행복’이라는 글귀를 남겼다. 대법원 직원 등과의 상견례에서는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일해 달라. 맡은 바 자리에서 역량을 펼치면 사법부 신뢰도 회복할 수 있다’는 취지로 독려했다고 한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