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의 배경이 된 1979년 ‘12·12 군사반란’의 44주년을 앞두고 반란군에 맞서 묵묵히 자리를 지켰던 희생자의 삶이 재조명되고 있다. 희생된 군인의 유족들은 12·12 반란에 대한 관심과 분노는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사회에 울리는 경종이라며 자기 임무에 충실했던 이들의 이름이 제대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영화에서 반란군에 맞서 육군본부 벙커를 지키다 전사한 조민범 병장의 실제 인물 고(故) 정선엽 병장의 동생 정규상(64)씨는 1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40여년간 항상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억울함이 있었다. 형님과 같이 책임감을 갖고 국가를 지키기 위해 반란군에 맞서 싸운 용감한 사람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병장은 12·12 군사반란 전사자 두 명 중 한 명이다. 23세의 나이에 국방부 초소 근무 중 반란군 제1공수특전여단 공수부대원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전역을 단 3개월여 앞둔 때였다. 쿠데타에 성공한 신군부는 정 병장의 죽음을 ‘오인으로 인한 총기사고’로 조작했다. 지난해 12월에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유족에게 전사확인서가 전달됐다.
정씨는 “반란군들은 끝까지 자신들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다 세상을 떠났다. 사과 한마디 없었다. 그게 제일 안타깝다”며 “형님은 국가를 위해 반란군에 저항하다 전사했다. 이 사실이 바로잡히고, 국민들도 잘 알게 된 것이 다행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직도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부 극우단체가 있어서 참 한심스럽고 답답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12 12 군사반란은 잊혀가는 현대사였다. 또 다른 한 명의 전사자 고(故) 김오랑 중령(영화 속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의 조카 김영진(66)씨는 “12·12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어졌었는데, (영화를 통해) 다시 기억되는 것 같아 고맙다”고 했다.
김 중령은 반란군에게 전세가 기운 상황에서도 상관인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을 지키다 전사했다. 김씨는 “12·12가 벌써 43년이 지났다. 50대도 잘 모른다. 그때 6~7세였으니까”라며 “그런데 이번에 영화관에서 보니까 젊은 사람도 많이 왔더라. 영화 만든 사람한테 고맙다고 했다”고 말했다.
세월에 잊히면서도 지금까지 김 중령과 정 병장의 추모비 건립 운동을 해온 김준철(58) 김오랑추모기념회 사무처장은 이들이 아주 대단한 영웅이 아니라 그저 임무를 다한 군인이라고 했다. 김 사무처장은 “그저 그 자리에 있었고 본인의 임무에 충실했던 것”이라며 “그것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들 때문에 12 12가 터졌고 우리가 아는 대로 역사가 흘러갔다.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김 중령과 정 병장의 희생이 깊은 울림을 주는 건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상식이 된 사회에 경종을 울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도 서울의 봄 영화를 보고 나온 일부 부모들은 김 중령과 정 병장을 언급하면서 자녀에게 ‘너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말라’고 얘기한다”며 “사익과 대세의 흐름을 좇으라는 건 지극히 자기 보전을 위한 행동이지만, 지켜야 할 선을 넘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반드시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현 백재연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