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모(45·여)씨는 1형 당뇨와 고혈압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만성 콩팥병 환자가 됐다.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내고 혈압 등을 조절하는 콩팥이 망가진 병이다. 콩팥 기능이 계속 악화돼 사구체여과율(콩팥이 1분간 걸러주는 혈액의 양)이 15% 아래로 떨어지면 ‘말기 신부전’으로 진단된다. 이 땐 혈액·복막 투석이나 신장 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
강씨는 2004년부터 복막 투석을, 8년 뒤에는 오른쪽 아래 팔에 ‘동정맥루’를 만들고 혈액 투석을 시작했다. 혈액 투석은 몸에서 피를 뽑아 투석 장비에 통과시켜 여과된 피를 다시 몸 속으로 넣는 것이다. 그러려면 많은 양의 혈액이 지나가도록 별도의 투석용 혈관, 즉 동정맥루가 필요하다. 대개 좌우 팔(위·아래 포함 4곳), 좌우 다리의 동맥과 정맥을 이어붙여 만든다. 원래 있던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기도 하지만 상태가 좋지 않으면 둘 사이에 인조 혈관을 삽입하기도 한다.
그런데 보통 매주 3번씩 혈액 투석을 장기간 받다보면 해당 부위에 굳은 살이 박히거나 감염 등에 의해 손상(협착 혹은 폐색)되기 십상이다. 강씨도 이로 인해 여러 차례 혈관성형술을 받았으나 최후의 보루였던 중심정맥(쇄골 아래 정맥) 폐쇄까지 발생해 더 이상 윗팔을 이용한 투석이 불가능해졌다.
부랴부랴 다리에도 동정맥루를 만들려했으나 이 역시 대퇴동맥 협착이 심해 힘들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몸의 모든 혈관이 다 망가진 막막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러다 지푸라기라도 구하는 심정으로 찾아간 순천향대서울병원에서 새 생명선을 잡게 됐다.
박영우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가 송단 외과 교수와 함께 아이디어를 내서 환자의 흉곽 내에 위치한 ‘홑정맥’을 인조 혈관으로 오른쪽 윗팔 동맥과 연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시도는 국내외 최초로, 연구팀은 2021년 국제학술지에 관련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박 교수에게 11일 새로운 투석용 혈관 수술법에 대해 들어봤다.
-해당 수술은 어떤 것인가.
“정확한 명칭은 ‘상완동맥-홑정맥 경흉부 동정맥루’ 수술법이다. 즉, 팔 위쪽의 동맥과 심장에 바로 연결된 홑정맥을 인조 혈관으로 이어서 투석 혈관을 확보하는 것이다. 강씨처럼 양쪽 중심정맥까지 막힌 혈액 투석 환자는 동정맥루를 만들기 위한 유출 정맥을 찾기가 매우 어렵고 흉곽 내 홑정맥을 사용할 경우 대개는 흉골(가슴뼈)을 절개하는 큰 수술이 필요한데, 출혈·감염 등 합병증 위험이 있다. 이런 한계를 흉골 절개 대신 오른쪽 옆구리를 7~8㎝ 절개하는 방식으로 극복했다.”
-어떤 사람들이 받을 수 있나.
“혈액 투석을 오래 받으면 양쪽 팔과 다리 혈관이 다 막히거나 망가져 사용이 어렵다. 이렇게 되면 몸통에 연결된 쇄골 아래 정맥, 목정맥, 대퇴정맥 등 몸의 중심정맥을 이용해 투석 접근로를 만든다. 중심정맥을 이용한 동정맥루도 오래 쓰면 문제가 생기는데, 이런 환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
-그런 중증 혈액 투석 환자들이 얼마나 되나.
“보건의료통계에 의하면 국내 만성 콩팥병 환자는 2018년 22만6800여명에서 지난해 29만6400여명으로 증가했다. 고령화나 고혈압·당뇨병 등으로 계속 증가 추세여서 신장 이식을 도와줄 공여자가 늘지 않으면 이 수술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혈액 투석은 신장 이식을 받기 전까지 하게 되는데, 장기 기증 부족으로 신장 이식까지 대기 기간이 길다. 신장학회 자료를 보면 혈액·복막 투석, 신장 이식 등이 필요한 만성 신부전 환자는 2019년 기준 1만8600여명으로, 그 중 84%(1만5500여명)가 혈액 투석을 받고 있다. 그들 중 홑정맥을 이용해야 할 정도로 팔·다리, 중심정맥이 망가진 중증 환자는 5% 미만으로 추정된다.”
-이 수술법의 전망은.
“홑정맥을 이용한 투석 혈관 수술을 받은 사람은 지금까지 16명이다. 이들은 수술 후 평균 한달 뒤부터 확보된 동정맥루로 혈액 투석을 시작했고, 특별한 문제 없이 사용하고 있다. 강씨도 14개월째 투석을 잘 받고 있다. 홑정맥은 직경이 1㎝ 정도로 혈류 압력을 다른 정맥(5㎜) 보다 적게 받는다. 물론 홑정맥 또한 장기간 쓰면 손상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현재로선 중증 혈액 투석 환자들에게 새로운 대체 수술로 자리잡을 것이다.”
-투석 혈관 관리가 중요한데.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수명이 천차만별이다. 제대로 관리 안되면 여러 가지 합병증이 생기고 결국 혈관 소실로 동정맥루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정상적인 투석 혈관은 손으로 만졌을 때 시냇물 흐르는 듯한 진동이 느껴지며 청진기로는 쉬익하는 소리가 들린다. 진동과 잡음을 매일 확인하고 만약 심장박동 소리 같거나 아예 진동·잡음이 느껴지지 않으면 협착·폐쇄 등의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
박 교수는 “눈으로 봤을 때 투석 혈관 주변이 붉게 부풀어오르거나 피딱지가 보이거나 압통·열감이 느껴지면 즉시 병원을 방문해 감염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