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장관이 정치 프레임에 갇혔습니다. 교계 모임에 참석해 간증했다가 “극우와 야합했다”며 집중 포화를 맞았습니다. 잇따른 해명에도 의혹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고 있습니다.
“장로님들 많이 오신다고 하셔서 갔을 뿐입니다. 제가 초청받은 자리에 전광훈 목사도 온 거고요. 당연히 간증을 요청한 사람도 전 목사가 아니었습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9일 국민일보가 주최한 국민비전클럽(회장 신범섭 장로) 예배에서 간증을 마친 뒤 기자에게 “전 목사 강연 순서가 제 다음이라는 사실도 현장에서 알았다”며 이같이 해명했습니다. 앞서 지난 4일 원 장관은 ‘경북·대구 장로총연합 지도자대회’의 간증자로 나섰는데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의 관련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아따 원희룡 간증 잘하네. 웬만해서는 내 마음에 안 들거든. 내가 아주 쏙 빠지게 하네.” 원 장관 이후 마이크를 잡은 전 목사가 그를 치켜세운 보도에 이어 간증을 마친 원 장관이 전 목사의 대기실을 찾아 인사했다는 기사도 나왔습니다. 전 목사의 칭찬은 원 장관의 정치 재개 행보에 올라타면서 삽시간에 실시간 뉴스 상위에 랭크됐습니다. 현직 장관이 ‘전광훈 집회’에 따라갔다는 그림이 완성된 것입니다.
기다렸다는듯이 야당 공세가 이어졌습니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일국의 장관이 임기가 끝나자마자 달려간 곳이 극우 목사의 앞이라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 다시 전광훈 목사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원 장관은 “당일 전 목사가 있던 대기실은 이날 강사진을 위해 마련된 대기실이었다. 전 목사와 인사를 하러간 게 아니라 두고 온 옷을 가지러 대기실에 갔다. 마침 강사실에 있던 전 목사와 마주쳤는데 못 본 척 지나갈 순 없으니 인사한 게 전부”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보수 통합이란 소신을 밝혔으나 통합의 대상은 정권 교체에 참여했다가 현재 함께하지 않는 이들”이라며 전 목사는 보수 통합에 부적합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원 장관은 앞으로도 전 목사와 교류할 계획은 전혀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원 장관의 해명은 십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원 장관이 구설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일각의 지적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총선 출마를 시사한 현직 장관의 간증은 의도와 상관없이 정치행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란을 접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원 장관이 메시지나 행보에 있어 조금 더 신중을 기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원 장관은 정치 프레임에 갇히지 않을 묘수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자에게 “신앙의 형식을 겉으로 내세우기보다 삶의 태도로 녹여내겠다. 내면에 기독교 신앙을 접목해 선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넉 달 뒤면 총선입니다. 거대 표밭인 교계를 상대로 표심을 잡으려는 후보들의 감언이설과 교회와 성도, 목회자들을 향한 구애가 이미 시작됐습니다. 어떤 일꾼을 뽑아야 할지 지혜로운 분별이 필요할 때입니다. 화려한 수사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 정신을 드러내고 실천해온 이들을 눈여겨봅시다.
글·사진=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