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코노미’는 폴리틱스(Politics·정치)와 이코노미(Economy·경제)의 합성어다.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는 현상을 우리나라에서 편의상 부르는 말이다. 제19대 대선을 앞둔 2016년 말 현대경제연구원이 이듬해 주요 트렌드를 조망하면서 만든 신조어로 알려졌다. 최근 국민일보와 한국무역협회가 ‘무역의 날’ 60돌 생일을 맞아 공동 개최한 좌담회에서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내년 우리 경제와 기업 활동을 짓누를 최대 변수로 폴리코노미를 꼽았다. 이 자리에 함께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정부의) 안 좋은 추정이 산업계에 긴장과 위축을 불러올 수 있어 걱정이지만 내년에 세계적으로 많은 선거가 있어 지정학 리스크가 상당히 크다는 게 팩트”라고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실제 내년은 40여개국에서 굵직한 정치 이벤트가 예정돼 있다. 이례적으로 선거가 몰린 해다. 유권자 수만 총인구의 41%에 달한다. 특히 우리가 경계하고 대비할 것은 세계에 만연한 정치 극단주의다. “중앙은행을 폭파하겠다. 페소를 폐기하고 달러를 공식 화폐로 쓰겠다”는 극단적 공약을 내건 하비에르 밀레이가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 뽑힌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치 극단화는 이변에 이변을 낳고 이는 글로벌 경제·통상 질서를 더 큰 혼란에 빠뜨릴 위험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집권하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없던 일로 할 기세다. 직접적인 영향권에 드는 우리 기업들은 내년 11월 미 대선까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우리나라는 이미 4·15 총선 정국이다. 출마자를 국무위원에서 빼주는 총선용 개각을 대놓고 해도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한국 정치는 자체로도 실망을 안기지만 더 큰 문제는 경제를 정치에 끌어들이는 행위가 날이 갈수록 대담해지고 뻔뻔해진다는 데 있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이 29표의 초라한 성적으로 막을 내리자 대통령실과 정치권이 긴급 ‘SOS’를 친 곳은 다름 아닌 재계였다. 올해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주요 그룹 총수와 경영진은 유치 가능성이 낮은 것을 알고도 온갖 인맥을 동원해 해외로 뛰었다. 총수의 동선을 굳이 밝혀가면서 홍보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대통령실을 향한 소리 없는 아우성이자 슬픈 날갯짓처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참패한 결과는 노력한 만큼 겸허히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데 지난 6일 부산 깡통시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기업 총수 8명을 동원해 ‘먹방’ 장면을 연출한 것은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말 그대로 ‘4류 정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꼴이다. 댓글에는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시대가 어느 땐데 총수들이 일할 시간에 (대통령이 부른다고) 뛰쳐나가야 하느냐” “총수 병풍 세워 서민 체험하면 부산시민들이 반길 줄 알았느냐” 등의 반응이 과연 과잉인지 곱씹어봐야 한다. 국민이 작금의 정치 쇼잉을 얼마나 냉철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다소 난감한 표정으로 떡볶이·빈대떡을 나눠 먹은 총수들은 이번엔 허겁지겁 네덜란드로 떠났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은 윤 대통령 국빈 방문에 경제사절단으로 또 함께 가 ‘반도체 세일즈맨’으로 힘을 보태야 한다. ‘1호 영업사원’의 역대 가장 잦은 해외 순방을 놓고도 재계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윤석열정부 2기 경제팀의 새 수장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현 경제 상황을 ‘꽃샘추위’에 빗댔다. 그의 말대로 한국 경제가 역동성을 되찾으려면 기업 발목 잡는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 정경유착의 정도가 지나쳤을 때 어떤 역풍을 맞았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김혜원 산업1부 차장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