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가라앉히기 위해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회 만들어야”

입력 2023-12-11 04:06
한국 사회의 만연한 분노가 타인을 향해 분출하고 있다. 분노 표출이 이해와 소통을 대신하면서 공동체 정신은 무너지고 극단적 개인주의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손을 맞잡는 공동체성 회복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한 해법으로 타인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연대, 공동체성의 회복이 제시된다. 무한경쟁 속에서 갈수록 ‘파편화’하는 극단적 개인주의를 끊어내려면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숙의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연대해서 사회적 불평등과 불공정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분노’라는 감정 자체가 나쁜 건 아니라고 말한다. 이를 타인을 향한 공격이나 사회적 폭력으로 쏟아내는 것에 대처할 필요는 있지만 분노 그 자체를 문제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왜 분노하는지 그 이유를 살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는 10일 “온라인에서 울분을 터뜨리는 사람이 오프라인에 나와 타인을 해코지할 것에 대해서는 감독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지만 단순히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 자체를 우려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감정이 부동산 문제에 대한 박탈감인지, 정치권에 대한 불만인지 파악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고 그걸 통해서 우리 사회를 바꾸기 위한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극한경쟁 속 개인 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사회적인 방식의 상호 이해나 문제 해결 능력이 점점 쇠퇴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큰 문제로 꼽힌다. 법원처럼 공식적 기관에서 판결이나 결정을 내려주지 않는 한 갈등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다 보니 좌절감이 분노로 쌓이고 폭발하게 된다는 얘기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당사자끼리 소통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최선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 숙의의 과정”이라며 ‘숙의’를 하나의 해법으로 제시했다. 독일과 스웨덴에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반드시 관계자나 집단 간 ‘숙의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는데, 이 같은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갈등 해결과 관련한 시민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숙의 문화를 사회 전반에 확산하는 문화적 측면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사회가 분노사회가 된 이유를 설명하려면 사회적 불평등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원로 사회학자인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나친 경쟁과 과도한 승자독식까지 경쟁 과정과 결과에서의 부정의, 불평등이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든다”며 “어떻게든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좀 더 평균적으로 정의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 구성원이 갈등과 분노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연대와 공동체성의 회복이 필요하다. 연대를 바탕으로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도록 공동체를 꾸려나갈 때 내부 갈등과 분노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중 누군가가 두드러지게 뒤처지지 않고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무차별적 범행을 저지른 이들의 인터뷰를 보면 ‘다른 사람만 행복해 보이고, 나는 이 사회에 속하지 못할 것 같아서’라고 범행 동기를 언급한다”며 “특정 개인이 다른 구성원에 비해 너무 소외되거나 혼자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소득재분배 정책, 복지 정책이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정책들은 수혜 대상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경연 이가현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