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른바 ‘신상 털기’를 통한 ‘사적 제재’에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분노를 유발한 이들의 정보를 공개해 대중의 비난 세례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적 제재는 법적 안정성을 무너뜨리고, 엉뚱한 피해자를 양산하거나 또 다른 범죄 행위로 이어질 우려가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9월 대전 유성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대중의 분노 속에 온라인상에서 가해 학부모들의 얼굴, 나이, 직업 등 신상이 공개됐다. 그러나 퍼 나른 분노는 마녀사냥이 됐다. 가해자와 무관한 사람들의 신상이 잘못 유포되면서다.
○○헤어 원장 이모(38)씨도 가해자 중 하나로 ‘좌표’가 찍혔다. 이씨 미용실 홈페이지는 악성 댓글이 넘쳐났다. 비난 전화도 폭주해 아예 전화선을 빼놓고 영업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씨는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가해자가 운영하는 가게와 상호가 같아 생긴 일이었다. 그는 “아직도 전화벨 소리만 들으면 깜짝 놀란다”며 “사람들은 교사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사망한 사건에는 분노하면서 가해자들이 했다는 행동을 나에게 똑같이 한다”고 토로했다.
이런 과도한 사적 제재는 피해자 측도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의정부 한 초등학교에서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목숨을 끊은 이영승 교사의 유족 법률대리인도 “유족은 학교 시스템 등 구조적 문제가 먼저 해결되길 원한다”며 “개인에 대한 사적 제재는 유족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고 했다.
사적 응징에 찬성하는 측은 수사기관 등 공적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탓이라고 말한다. 신상 폭로 게시물에는 “범죄자 인권만 우선하는 사법체제” “솜방망이식 처벌과 유전무죄 법” “피해자 외면” 등을 공통적으로 들고 있다.
실제로 사법부의 판단은 국민들의 법 감정을 따라가지 못할까. 국민일보는 2022∼2023년 진행된 국민참여재판 판결문 148건을 심층 분석했다. 시민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은 일반 국민의 상식이 반영된 법적 판단으로 여겨진다. 판결문 분석 결과 시민들의 판단과 법원의 판단 간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배심원단과 법원이 함께 평결을 내린 혐의 126건 가운데 유무죄 판단이 일치하는 비율은 94%(119건)에 달했다. 일치하지 않는 비율은 6%(7건)에 그쳤는데, 이 중 6건은 오히려 배심원단의 무죄 판단을 법원이 유죄로 뒤집은 사례였다.
배심원단과 법원이 결정한 형량도 비슷했다. 배심원단과 법원이 양형을 종합해 판단한 사건(60건)에서 양형 판단이 일치하거나 법원이 더 무거운 형을 내린 경우는 68%(41건)였다.
전문가들은 정제되지 않은 대중의 분노가 무분별한 사적 제재로 퍼져 나가는 환경을 지적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도 “SNS는 부정적, 공격적인 감정을 유발할수록 돈벌이가 된다”며 “SNS를 통해 이뤄지는 사적인 신상공개도 이 같은 상업주의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신상이 잘못 공개되고 나면 그 사람은 ‘사회적 사망’ 상태에 이른다”며 “신상 공개를 통해 실현될 이익도 중요하지만 잃게 되는 피해도 심각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강민 이정헌 기자 riv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