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김연신(54)씨에게 2020년 1월 17일은 “뚜껑 열린 날”이었다. 전세 계약이 끝나는 이사날 김씨는 임대인에게서 “돌려줄 돈이 없다. 경매로 가져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김씨는 “임대인은 이후 전화·문자도 안 받고, 쫓아가면 되레 나를 경찰에 신고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결국 그는 지난 4월 ‘나쁜 집주인’ 홈페이지를 통해 임대인의 신상을 폭로했다.
피해자들은 ‘피해 회복’을 위해선 온라인 신상 공개가 불가피하다고 항변한다. 박진 대전 전세사기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전세사기가 터져 추가 피해자가 나올수록 경찰 수사는 지체된다”며 “그만큼 피해 회복도 늦어진다”고 지적했다. 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 팀장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려면 임대인이 ‘다수의 피해자’에게 피해를 준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며 “피해자들이 공개된 신상을 보고 제때 모여야 임차인으로서 입증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상 공개는 법·제도적 해법을 찾지 못한 피해자들이 찾는 마지막 방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해 온 구본창 ‘양육비를 해결하는 사람들(구 배드파더스)’ 대표는 “법적인 절차만 3~5년이 걸리는 데다 그사이 상대방이 재산 명의를 돌려놓기도 한다”며 “법원이 감치명령을 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피해 회복을 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신상 공개는 ‘공표 제도’로 자리 잡기도 한다. 악성 임대인과 양육비 미지급 등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제도적으로 해소된 결과다. 현행법상 공표 대상에는 양육비 채무불이행자, 악성 임대인, 체불사업주, 고액·상습체납자 등이 있다. 다만 대상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이은영 변호사(법무법인 통)는 “온라인 신상 공개는 얼굴 사진까지 공개하는 등 피해 회복에 실효성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효원 변호사(법무법인 숭인)는 “신상 공개를 명예훼손 관점에서만 바라봐선 안 된다”며 “법·제도가 미비했던 영역에선 신상 공개가 피해 회복을 위한 구제책 역할도 했다”고 평가했다.
이정헌 이강민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