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갈수록 분노가 공격적으로 분출하고 있다. 일상 속 갈등이 강력 범죄로 이어지고, 이유를 알 수 없는 흉기 난동 사건도 벌어진다. 온라인에서는 어떤 이슈가 터질 때마다 공분을 넘어 증오와 혐오에 가까운 반응이 쏟아진다.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10일 "분노라는 감정이 파괴적, 공격적인 방식으로 표현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전대미문의 위험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분노를 잠재우고, 그 원인을 해소할 사회적 기제도 작동을 멈췄다. 정치는 오히려 대중의 분노와 혐오를 부추기고, 시민사회는 이를 의제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창간 35주년을 맞아 '분노사회 대한민국'의 현실과 그 원인을 짚고, 해법을 모색한다.
층간소음이나 주차 시비와 같은 일상 속 갈등이 강력범죄로 번지고 있다. 이웃 간의 층간소음 시비가 살인이라는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도 늘고 있다.
2022년까지 과거 10년간 층간소음 범죄와 관련해 법원에서 선고한 형사1심 판결문 분석 결과 총 734건의 선고 중 강력범죄(살인·강도·강간·방화) 비율이 총 73건으로 9.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일보가 단독 입수한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의 ‘층간소음 범죄의 특성과 경찰의 대응 방안(김성희)’ 보고서 분석 결과다.
살인 17건, 살인미수 45건으로 그 비율(62건)이 층간소음 관련 범죄 비중에서 8.4%를 차지했다. 방화(9건)는 1.2%, 강간(2건)은 0.3%로 기록됐다. 734건 중 상해(163건)가 22.1%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협박(140건)·폭행(117건)·살인 및 살인미수(62건)·폭력행위 등(52건)·손괴(45건) 등 순으로 나타났다.
층간소음이 이웃 간에 대화로 해결되지 못하고 범죄화돼 법원으로 오는 경우도 증가 추세다. 2013년 43건(5.9%)에 불과하던 층간소음 범죄 관련 선고는 2018년 70건(9.5%), 2020년 86건, 2022년 125건(17.0%)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층간소음 문제를 인식한 후 6개월~1년간 과도기를 거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분노의 감정이 시작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층간소음의 골든타임을 6개월 정도로 보는데, 통상 1년이 지나면 서로의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 대면하게 되고 이때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문제는 당사자 외에 제3자나 기관이 개입해 갈등을 해결할 현실적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환경부 산하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가 있지만 분쟁 해결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한계가 있다. 경찰의 개입으로 갈등이 종료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당사자의 화를 키워 공무집행방해죄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으로 사회·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열심히 사는데도 힘들다’는 억눌려진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며 “개인의 사생활을 중시하고 익명성을 추구하면서 상대를 이웃이 아니라 그저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으로 여기다보니 분노를 쏟아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