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좋아하고 영향을 받아 왔던 많은 작가들 중에서도 내게 각별한데, 그 이유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삶의 어느 기간 동안 나는 그의 글에 깊이 빠져 있었고, 번역서 ‘달걀과 닭’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다른 책을 읽기 어려울 정도로 매료돼 한 친구는 나에게 새로운 종교가 생긴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작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1977년에 녹화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인터뷰 영상이 나온다. 리스펙토르는 1977년 12월에 사망하였으므로 그가 세상 떠나기 고작 몇 달 전 영상인 셈이다. 당시 그는 말기암 투병 중이었다.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꼿꼿한 자세로 질문에 응하는 그의 표정은 글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포르투갈어로 이야기하는 말투는 느리고 진중했다. 몇 년 동안 이 영상은 이해할 수 없는 목소리로 다만 압도적인 이미지로 내게 남아 있었는데, 오늘은 영어 자막본을 찾을 수 있었다.
인터뷰에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인터뷰어의 질문에 대한 리스펙토르의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그는 종종 ‘이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어요’, ‘저는 잘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작가들의 인터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러한 태도는 보는 사람에게 모종의 자유를 줬다. 우리가 모든 것에 대해 다 알 필요가 없다는, 주어진 질문에 대해 다만 ‘모른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다는 권리와 용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앎의 영역으로 환원할 필요는 없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내버려두는 그의 모습은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어쩌면, 리스펙토르의 이러한 태도에서 내가 그의 글에 깊이 매료되었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살아가며 만나게 될, 해소되지 않는 많은 질문들 앞에서 내가 그의 얼굴을 떠올릴 것이라는 확신 역시도.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