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 사망 사고와 관련해 원청기업 대표에게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대법원이 결론 내렸다. 원청기업 대표가 작업 현장의 위험성이나 운전원 작업 방식까지 인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7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전 사장 등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서부발전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으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김씨는 2018년 12월 10일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야간에 떨어진 석탄을 치우는 작업을 하던 중 사고가 났다. 김씨는 사고로 숨진 지 5시간이 지나서야 경비원에게 발견됐다. 야간에는 2인 1조 근무가 원칙이지만 회사 인력 문제 탓에 김씨 홀로 근무하다 참변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2020년 8월 원·하청 기업 법인과 임직원 14명을 무더기 기소했다. 검찰은 김씨 사고와 관련해 원청회사 책임자인 김 전 사장이 사고 방지 등 안전조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1·2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피고인에게 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 내부 개별 설비까지 작업 환경을 점검하고, 위험 예방조치를 이행할 직접적 주의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1심은 작업 현장 책임자인 권모 전 태안발전본부장에게 책임을 물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으나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위탁용역 관리 업무는 피고인이 아닌 기술지원처가 담당해 직접적 주의 의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서부발전 법인도 김씨와의 실질적 고용 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태안발전본부 기술지원처장과 백남호 전 발전기술 사장 등 10명, 발전기술 법인은 이날 유죄가 확정됐다. 다만 금고형이나 징역형 집행유예에 그치면서 실형을 받은 이는 없었다.
사고 당시 24세였던 김씨의 죽음은 산업 현장에 만연한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우리 사회에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하청 노동자 산재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김용균법)이 2018년 국회에서 통과됐고, 지난해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도 시행됐다. 안전보건 의무 등을 소홀히 해 산업재해가 일어나 인명 피해로 이어지면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도 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내용이다. 현재까지 선고된 하급심 11건은 모두 유죄가 나왔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