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맛’으로 인기를 끈 K라면 시장에 뜻밖의 ‘순한 바람’이 불고 있다. 매운맛을 없앤 농심 ‘순하군 안성탕면’(사진)이 출시 한 달 만에 외국인 특화 대형마트에서 라면 매출 1위에 올랐다. 지극적인 ‘불맛’으로 승부수를 던지던 K라면이 보편적인 ‘순한맛’까지 섭렵하며 입지를 넓히고 있다.
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1~30일 서울 중구 롯데마트 제타플렉스 서울역점에서 라면 매출액 1위는 ‘순하군 안성탕면’이 차지했다. 순하군 안성탕면의 매출액은 1519만원으로, 신라면(2위) 매출 1024만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무엇보다 ‘불맛’이 대세인 상황에서 순한맛 라면이라는 승부수가 통했다는 게 주목된다. 롯데마트 제타플렉스 서울역점에서 순하군 안성탕면 매출은 해외에서 K라면의 인기를 주도하는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의 매출을 크게 뛰어넘었다.
제타플렉스 서울역점 매출은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K라면 트렌드를 확인하는 가늠자이기도 하다. 외국인 소비자가 가장 많이 드나드는 대형마트로 꼽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대대적인 새단장 이후 제타플렉스 서울역점 매출 중 외국인 비중은 약 40%에 이른다. 라면은 과자·견과류·김에 이어 외국인 매출 상위 상품군 5위권에 드는 품목이다.
제타플렉스 서울역점에서 근무하는 라면업계 관계자는 “이 매장에서 라면을 사는 소비자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라고 보면 된다”며 “생각보다 매운 음식을 아예 먹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많은데 이들이 순한 라면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매장에서는 잡채처럼 맵지 않은 면류가 타 대형매장보다 월등히 많이 판매된다고 한다.
순하군 안성탕면 매출액은 전국 대형마트로 범위를 넓혔을 때 지난달 농심 봉지라면 중 5~6위권인 것으로 집계됐다. 농심의 스테디셀러 신라면, 짜파게티, 안성탕면, 너구리의 뒤를 쫓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보다 외국인들의 선호가 높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농심에 따르면 순하군 안성탕면은 지난 10월 23일 출시된 이후 40일 만에 830만 봉지가 판매됐다. 앞서 출시된 ‘신라면 더레드’와 비슷한 판매 추이다. 신라면 더레드는 출시 80일 만에 1500만 봉지가 판매됐다.
순하군 안성탕면은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아 맵기를 나타내는 지표인 스코빌 지수가 ‘0’이다. 기존 안성탕면의 맛을 내는 된장과 소고기 육수에 닭 육수가 더해진 국물 맛이 특징이다. 가격은 소매점 기준 900원인 안성탕면과 같다.
일각에선 출시된 지 채 한 달이 안 된 신제품인 만큼 ‘반짝 효과’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농심은 순하군 안성탕면을 라면 코너 맨 앞에 배치하는가 하면, 매장 내 시식행사를 통해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K라면 인기를 매운맛 제품이 주도해왔지만 순한 맛을 선호하는 외국인 잠재고객이 그만큼 많다는 것으로 보여준 것”이라며 “해외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춘 제품이 수출액 1조원을 돌파한 한국 라면의 열풍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