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방치에 ‘44시간 표류’… 찾거나 사살 막을 생각 없었다

입력 2023-12-08 04:08
2020년 9월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공무원이 실종 직전까지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모습. 감사원은 7일 문재인정부가 사건을 은폐·왜곡했다는 최종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해양수산부 소속 서해어업관리단 공무원 이대준(당시 47세)씨가 서해에서 실종된 시점은 2020년 9월 21일 오전 1시58분쯤이다. 그는 인천 옹진군 소연평도 남방 2.2㎞ 지점에서 사라졌다.

이씨는 37시간30여분이 지난 22일 오후 3시30분쯤 북한 선박에 의해 발견됐다. 실종 지점에서 27㎞ 떨어진 북한의 황해남도 강령군 구월봉 인근 해역이었다.

합동참모본부는 1시간10분여가 지난 오후 4시43분쯤 이씨 발견 정황을 확인했다. 문재인정부 국가안보실은 같은 날 오후 5시18분 ‘우리 공무원이 북한 해역에서 북측에 발견됐다’는 합참 보고를 받았다. 이씨가 39시간 동안 바다에서 표류하며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북측은 이씨를 구조하지 않고 방치했다. 감사원이 7일 발표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관련 주요 감사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정부의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통일부, 합참, 해양경찰청 등은 이씨를 구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안보실은 합참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이후 ‘최초 상황 평가 회의’를 열지 않았다. 국방부도 이씨의 신변안전 보장을 촉구하는 대북 전통문을 즉각 발송하지 않았다. 안보실로부터 상황을 전달받은 해경은 경찰 등 관계기관에 협조를 요청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경찰은 이씨가 북측에서 발견된 사실조차 모른 채 이씨가 실제 발견된 곳에서 27㎞ 떨어진 실종 해역에서 수색을 이어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통일부 담당 국장은 오후 6시쯤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관련 정황을 파악하고도 이를 장·차관에게 보고하지 않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당시 안보 사령탑이었던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서주석 국가안보실 1차장은 같은 날 오후 7시30분이 되기 전 퇴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9월 22일 오후 7시40분쯤 북한군의 시야에서도 사라졌다. 이후 오후 8시50분쯤 이씨는 실종 지점에서 38㎞ 떨어진 황해남도 강령군 등산곶 인근 해역에서 다시 발견됐다. 그로부터 한 시간쯤 지난 오후 9시40분부터 10시50분 사이 북한군은 이씨를 사살하고 시신까지 소각했다. 이씨는 표류 44시간 만에 정부의 방치 속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씨가 피살된 후 관계기관들은 책임 회피를 위해 자료를 삭제·왜곡하기 급급했다. 안보실은 9월 23일 오전 1시 개최된 관계장관회의에서 이씨의 시신 소각 사실에 대해 보안유지 지침을 내렸다. 국방부는 합참에 관련 비밀자료 삭제를 지시했고, 합참은 군 첩보 보고서 60건을 실제로 삭제했다. 특히 국방부는 같은 날 오후 1시30분 이씨가 생존 상태인 것처럼 작성한 거짓 안내 문자를 기자들에게 발송하기도 했다. 해경은 9월 29일 2차 수사 결과 발표에서 “이씨가 월북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사실을 왜곡했다. 해경은 이씨의 도박 사실과 도박 빚, 이혼 등 부정적인 사생활을 추가로 공개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