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반동성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안드레아 윌리엄스 변호사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을 절대로 닮지 말라”고 했다. 영국의 심각한 성적·도덕적 타락상을 두고 한 말인데, 이렇게 된 과정에 영국 교회가 미온적으로 대처한 점을 꼬집었다.
교회가 수수방관하는 사이 이른바 ‘성 혁명’ 법안이 하나둘 통과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영국 교회는 수십년 전부터 쇠퇴 일로다. 고풍스러운 교회 건물이 클럽과 술집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이 해외 토픽에 오르내린 지 오래다.
하지만 300년 전쯤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리(1703~1791)가 영국 사회에서 펼쳤던 메서디스트(Methodist)운동은 교회의 사명과 역할을 되새기게 만든다. 산업혁명의 물결이 거세지던 당시 영국에선 공동경작지가 폐쇄되면서 쫓겨난 농노들이 대거 도시로 흘러들었다. 그들의 삶은 척박하기 그지없었다. 영국 역사가 존 플럼(1912~1975)은 18세기 영국 사회를 이렇게 묘사했다.
“창고에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들의 돼지와 닭, 때로는 말과 소 등이 함께 살고 있었다. 맨체스터에는 한 방에 10명 정도가 거주하는 게 보통이었다. 이들은 옆 사람의 수염 온도를 느낄 정도로 붙어 자야 했다.” 산업혁명이 몰고 온 급격한 사회변화에 자살자도 속출했다. 급변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삶 속에서 사람들은 술과 도박, 싸움 등으로 공허감과 불안을 달랬다. 기아와 질병에 허덕이는 이들도 넘쳐났다.
당시 웨슬리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채무자와 교도소 재소자들을 만나 위로하고 격려하는가 하면 그들이 직장을 갖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줬다. 이런 구제 활동을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오랜 기간 꾸준하게 해나갔는 점이 퍽 인상적인데, 웨슬리는 팔순 즈음 이런 기록을 일기장에 남기기도 했다. “신도회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에게 석탄과 빵을 나눠주는데 옷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나흘간 마을을 돌며 200파운드를 모았다. 그런데 발목까지 눈이 차서 종일 내 발은 눈 녹은 물에 젖어 정말 힘들었다.”
과연 메서디스트로 불릴 만한 삶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감리교 신자 정도로 일컬어지는 메서디스트는 본래 ‘방법·규칙(method)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란 뜻을 담고 있다. 웨슬리를 비롯해 18세기 부흥운동에 동참했던 이들은 성경이 강조하는 것들, 이를테면 기도, 말씀, 교제, 금식, 성찬, 구제 활동 등을 고지식할 정도로 철저하게 준수했다. 이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조소와 질시를 당했는데, 그러면서 얻은 별명이 메서디스트였다.
이들의 활동에서 눈길을 끄는 건 가난한 이들을 향한 구제였다. 생전의 웨슬리와 메서디스트들이 돌본 구제의 대상이 경제·사회적 약자가 주류였다면 지금은 약자의 범주를 더 넓게 봐야 하지 않을까. 우울증 등 마음이 아픈 이들과 다양한 심리·정서·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두드러진 현상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 수는 지난해 처음 100만명을 넘어섰다. 2018년(75만2976명)보다 33% 가까이 급증했다.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방문한 환자 수는 최근 6년 사이 70% 넘게 늘었다. 급기야 이달 초 대통령 직속으로 정신건강 정책 혁신위원회가 꾸려졌다. 정부가 정신건강까지 관리한다는 건데 2027년까지 국민 100만명에게 상담 기회를 제공하고 10년 안에 10만명당 자살률을 현재(25.2명)의 절반 수준까지 낮춘다는 계획이다.
정부 못지않게 교계 영역에서 주목해야 하는 이들 또한 마음과 정신이 허약한 사람들이다. 저출산 대응, 자살·고독사 예방 활동 못지않게 이들을 보듬고 챙기는 일이야말로 생명을 살리고 지키는 활동이다. 교회에는 희망을 건네는 메시지(성경)가 있고,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목회자·성도)들이 있다. 아프고 병든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한 이들도 차고 넘친다. 교회 공동체가 마음 아픈 이들에 대한 접근법을 잘 배워서 그들 곁을 지켜줘야 할 때다. 메서디스트들처럼 우직하게.
박재찬 종교부장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