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아이폰 운영체제(iOS) 업데이트에서 고의로 성능을 떨어뜨렸다는 의혹 관련 소송에서 법원이 소비자 손을 들어줬다. 아이폰 기기를 둘러싼 소송에서 애플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은 처음이다.
서울고법 민사12-3부(재판장 박형준)는 6일 아이폰 이용자 7명이 애플인터코퍼레이티드와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을 뒤집고 “애플이 원고에게 각 7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은 애플이 아이폰 소비자의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을 제한해 정신적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전원 꺼짐 현상 방지 목적이더라도 성능이 일부 제한되는 이상 애플을 신뢰한 구매자에게 업데이트 여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설명·고지할 의무가 있었는데 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산상 손해 주장 부분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논란은 2017년 애플이 구형 아이폰 운영체제를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성능을 고의로 떨어뜨렸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애플은 전원이 꺼지지 않도록 중앙처리장치 속도를 줄여 전력 소모량을 낮췄다고 설명했지만, 일부 소비자는 애플이 신형 아이폰 판매를 위해 구형의 성능을 떨어뜨렸다고 주장했다. 미국 칠레 등 세계 각국에서 소송이 제기됐고 국내에서도 2018년 원고 6만여명, 배상금 약 127억원의 대규모 소송이 시작됐다.
1심은 업데이트로 인한 성능 제한이 반드시 손해라고 볼 수 없고 배상 책임을 묻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후 성능저하 증거가 확실한 7명이 항소심 소송을 진행했다.
이용자 측 법무법인 한누리 김주영 변호사는 “항소심 과정에서 기술적 입증을 소비자는 할 수 없고, 애플에 모든 기록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거대 기업이 증거를 독점하면서 소송에서 우위를 점하는 일을 막기 위해 한국식 디스커버리 제도가 꼭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재판 시작 전 양측이 관련 증거를 서로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다.
애플은 입장문을 통해 “제품 사용 경험을 의도적으로 저하시키거나 제품 수명을 단축시킨 적이 결코 없다”고 밝혔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