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앙과 문화] 우리가 바라는 선배, 내가 되고 싶은 어른

입력 2023-12-09 03:06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가 하나님의 문화명령을 수행해 하나님나라를 확장해가는 선교사역을 돕기 위해 설립됐다. 대중문화의 역기능으로부터 교회의 정체성을 지켜내고, 나아가 올바른 기독교 문화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을 한 달에 한 번 소개한다.

픽사베이

현재 30~40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릴 적 한 번쯤은 ‘서른 살 정도가 되면 자녀도 있고, 안정적인 직장도 있고, 내 집 마련도 했겠지’라는 막연한 상상들을 해봤을 것이다. 그 시절은 대부분이 인생의 정답을 그렇게 결론짓고, ‘성숙한 어른’이 되는 기준을 ‘안정감’과 ‘성공’에만 뒀었다. 하지만 점차 성장해 가면서 불확실한 경기 전망과 사회적 가치관의 급변을 경험하게 된 청년들은 내가 알던 어른이 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좋은 대학을 위한 12년의 공부, 취업을 위한 대학 생활을, 결혼을 위한 내 집 마련, 내 집 마련을 위한 직장생활, 그 이후엔 출산과 양육에 인생을 바치는 삶이 그것이다. 심지어 과거에는 이 모든 과정을 20~30대 초반까지 다 해치워왔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청년들은 그 성숙한 어른이 되려는 도전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한다. 아마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경제불황으로 인한 고용 불안정과 비정규직의 증가라는 사회적 이유도 있지만, 개인에게 있어 삶의 행복이라는 기준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연일 보도되는 기사들은 ‘청년들이 어른이 되기를 유예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청년들은 어른이 되기를 포기한 걸까.

사실 ‘지연된 어른’ 현상만을 지적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기우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청년들은 과거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약속해 온 성숙한 어른의 개념을 조금 달리 보기로 했을 뿐이다. 더 이상 ‘30대 중반인데, 자녀가 있기는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른이 되지 못한 미성숙한 존재라고 평가 내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청년들이 말하는, 이른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란 무엇일까. 필자가 주변 청년 및 젊은 목회자들과 대화를 나눈 것, 그리고 책 ‘2024 트렌드 모니터’(시크릿하우스)에 실린 ‘어떤 사람이 어른인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리해 봤더니, 대략 3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었다. 첫 번째,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잘 알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어른이고 두 번째, 작은 일이라도 성실하고 꾸준하게 실천해 내는 어른이다. 마지막으로는, 섬세한 언어와 감수성으로 타인에게 함부로 상처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어른이다. 사실 이것만 보면, 기존에 존경받던 어른의 모습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의 기준을 성공과 안정감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행복, 더 나아가 사회에 끼치는 선한 영향력에 두는 것으로 변화했다는 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변화된 어른의 개념을 안고 살아가는 요즘 세대에게, 기성세대는 과연 좋은 어른이 되어줄 수 있을까. 확실히 과거에 비해, 어른으로 존재한다는 것, 또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신뢰감을 준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은 맞다. 하지만, 오히려 정해진 답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그 어느 때보다 삶 속에서 성숙한 어른, 좋은 선배를 만나기를 원하고 있다. 덩달아 자신이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열망도 크다. 교회에도 신앙의 선배상, 혹은 존경받는 목회자상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성공과 안정감이라는 어른의 척도가 사라지고 있듯이, 건강한 교회라는 척도나 부흥이라는 개념, 훌륭한 목회자상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과거의 교회 혹은 목회자의 모습만을 가장 최선의 것이나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청년들, 좋은 교회를 만들어나가고 싶은 신앙의 후배들이 많이 있다. 이 움직임에 좋은 선배님들이 함께 참여해 주고 고민해 주고, 또 격려해 줄 때 우리 교회는 더 선한 사회, 더 나은 교회의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임주은 연구원(문화선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