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4년 미국에서 제정된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은 노예제 갈등의 뇌관을 터트린 사건이었다. 당시 미주리주 서쪽 지역을 네브래스카와 캔자스주로 분리하는데 그 지역 노예제 실시 여부를 주민투표로 결정한다는 법이었다. 1820년 미국이 노예를 금하는 자유주(州)와 노예주의 세력균형을 위해 타협했던 미주리 협정을 무효화시키는 내용이었다. 그해 5월 주민투표 과정에서 노예제 찬반 세력간 심각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노예제에 어쩡정한 태도를 보였던 휘그당이 자멸하고 노예제 폐지를 전면에 내건 공화당이 탄생했다. 이어 1860년 대선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예제 폐지를 기치로 여러 세력을 규합하는 ‘빅텐트’(big tent) 전략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링컨은 노예제 즉각 폐지가 아니라 새로운 주의 노예제 시행을 막자는 온건한 논리로 여러 진영을 끌어들였다.
지금은 미 공화당의 보수성향이 강해지면서 민주당이 특정 계급이나 이념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는 빅텐트 또는 포괄 정당(Catch-all party)을 표방하고 있다. 링컨 시대 민주당과 공화당은 지금 색깔과 거의 정반대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선 1990년 1월 집권 여당인 민정당과 민주당, 공화당이 민주자유당으로 합당한 게 빅텐트라고 하면 억지일까. 당시 김영삼 민주당 총재측은 야합이란 비난에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논리를 댔다. 1997년에는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손잡고 대권을 쥐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빅텐트가 곳곳에 펼쳐지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최근 “슈퍼 빅텐트를 치겠다”고 하자 이준석 전 대표는 다음날 “당내 화합도 못하면서 어디에 빅텐트를 친다는 것이냐”고 받아쳤다. 오히려 이 전 대표가 양당에 염증을 느끼는 중간지대에 빅텐트를 치려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도 거물들이 이재명 대표와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이자 또 다른 빅텐트 전망도 나온다. 혼탁한 정치를 바꿀수 있는 빅텐트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겠다.
노석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