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가 한국의 1970년대 실험미술 거장인 원로 이건용 작가의 후원을 받아 제정한 신경다양성(발달장애 등) 신진 작가 발굴 공모전인 제2회 아르브뤼미술상이 며칠 전 13명의 최종 수상자를 냈다. 올해는 지난해(71명)보다 35% 늘어난 96명이 응모했다. 대상을 받은 천민준(23)씨의 수상작 ‘북극의 예술가들’은 기성 미술에서는 보기 힘든 날것이 주는 순수한 기쁨이 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시각예술가 유화수씨는 “제도권 미술교육을 통해 터득한 기법과 기량과는 다른, 자기만의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접근하는 방식이 신선했다. 더불어 작품의 완성도와 밀도 면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아르브뤼미술상 운영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공모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소회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국민일보는 올해부터는 ‘발달장애’ 대신 ‘신경다양성’이라는 용어를 썼다. 언어는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장애는 사회가 규정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신경다양성은 구미 예술계에서 확산되는 용어다. 발달장애라는 표현이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주변화하고 배제시키는 차별적 언어라는 반성에서 출발해 그 대안으로 찾은 말이다. 위계를 둔 차별이 아닌 다양성을 인정하는 차이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태도를 제안하며 이는 장애예술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아르브뤼미술상이 복지의 관점, 온정적 관점이 아닌 미학적 관점에서 신진 작가를 발굴하겠다는 취지는 장애예술가가 갖는 그러한 ‘차이의 예술’에 주목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올해는 또 나이 상한을 풀었다. 1회 때는 ‘18세 이상 39세 이하’였던 응모 자격을 ‘18세 이상’으로만 정했다. 덕분에 40세를 넘은 12명이 응모했고, 수상자 중 최고령인 68세 윤미애씨가 장려상을 받았다. 연초 일본의 장애예술 현장을 취재 갔을 때 70대가 장애예술가로 활동하는 것을 보며 놀란 적이 있다.
그때 ‘신진’의 의미를 40세 미만으로 정하는 것은 편견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일은 모른다. 신체적 장애든, 정신적 장애든 늦은 나이에 발현될 수 있다. 그래서 정신장애까지 포함한 다양한 지적 스펙트럼을 가진 신예의 등용문으로 확장했다.
여기서 심사 과정에서 심사위원이 부닥친 고민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윤석열정부 들어 장애예술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면서 이것이 초래하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다.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그 부분을 경계했다. “근래에 장애예술에 대한 관심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빠르게 표현의 도식화, 패턴화가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심상용 서울대 교수) “때로는 부모를 포함한 활동 보조인과 같은 조력자의 보이지 않는 수고와 노동까지 작품을 통해 전해지기도 한다.”(유화수씨) “최근에 장애예술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몇몇 작가는 이미 기성화해 예술적 표현력과 행위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
자폐 등 신경다양성 작가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일상에서 가족의 조력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전문가인 부모가 행정적인 도움을 넘어 예술 영역까지 간섭할 경우 개개인의 예술이 갖는 창의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 정부도 문화산업을 육성하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원 하되, 운영에는 간섭하지 않음으로써 자율권을 보장하는 이른바 ‘팔길이 원칙’을 요구받는다. 장애인 예술가 가족도 예술 지원에서 팔길이 원칙이 필요하다. 아울러 가족 단위를 넘어 전문 예술가가 참여하는 예술 커뮤니티도 사회적 차원에서 요구된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