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아침/ 산에 갔더니/ 눈송이 행성들이 마구 날아와 부딪치는데/ 하나도 아프지 않은/ 그 수많은 충돌/ 내가 이름도 모르고 스쳐 지나간/ 그 모든 얼굴들/ 알아도 차마 이름 부르지 못한/ 그리운 뒷모습들/ 별 하나 뜨지 않은/ 밤하늘에/ 별 하나 떠 있다면/ 그건 아마/ 내 가슴 속에 들어와 잠든/ 너의 이름이겠지/ 사람들은 보지 못해도/ 내 눈에만 보이는/ 너의 얼굴이겠지.”
필자가 쓴 시집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에 수록된 ‘겨울 5’라는 시다. 대한민국 사람은 복 받은 사람들이다. 사계절을 뚜렷하게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를 가면 1년 내내 여름이다. 겨울도 없고 봄 가을도 없는 그런 나라도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계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은 푸른 생명이 스프링처럼 솟아난다. 그 지평선의 푸른 소나타로 온 대지가 푸르게 빛난다. 그러니 봄은 환상적인 생명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마에스트로이다. 여름은 신록의 계절로 온 들녘과 산을 푸르게 만든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정열의 사랑과 야망으로 가득하다. 그러다 가을로 접어들면 푸르던 잎사귀들도 메마른 낙엽이 되어 떨어진다. 겨울이 오면 하얀 눈송이들이 날리고 하얀 설원에 둘러싸인 겨울 숲은 적막한 기다림 속에서 봄을 꿈꾼다. 그런데 계절은 명확히 나뉘지만 우리 내면은 언제나 사계가 함께할 수도 있다.
필자가 쓴 ‘봄 1’이라는 시가 있다. “눈앞의 꽃 지고 나면/ 세상 모든 꽃 다 진줄 알았더니/ 일어나/ 눈을 들어보니/ 사방 천지가 다 꽃이었다/ 꽃 한 송이 졌다고 울지 마라/ 눈 한 번만 돌리면/ 세상이 다 봄이다.”
그렇다. 우리가 눈 한 번만 돌리면 세상이 다 가을일 수 있고 봄일 수 있고 여름일 수도 있다. 아니, 겨울일 수도 있다. 나는 일찍이 눈이 뜨여서 한국교회 공적 사역과 연합사역에 앞장섰다. 유무형 결과도 많이 이뤘지만 아직도 연합기관만큼은 가시적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어쩐지 최근 몇몇 선구자에 의해 한국교회 연합기관이 하나 돼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마치 엄동설한에도 들녘에 보리싹이 피어나는 것처럼 연합기관도 하나가 돼야 한다는 소리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교회는 더 늦기 전에 무조건 하나가 돼야 한다.
어느 조직이나 분열하면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다. 세계 교회사를 보면 동로마교회가 화상숭배파와 화상반대파로 나뉘어 다투다가 망했고, 러시아정교회도 소모적 예전 논쟁을 하며 분열하다가 망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여전히 한국교회 연합기관은 나뉘어 있다. 지금 한국교회 연합기관의 하나 됨은 대세이며 급물살을 타고 있다.
물론 반대 논리도 존중한다. 그러나 각자 입장에서 펴는 논리보다 역사적 교훈이 더 중요하다. 한국교회를 향한 반기독교 세력의 공격과 관련 입법안이 밀려오는데 한국교회 연합기관이 하나 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제는 어느 한 교회, 교단만의 힘으로는 안 된다. 한국교회 전체가 힘을 모아야 반기독교 사상과 악법 쓰나미를 막을 수 있다. 지금 하나 되어 한국교회 생태계의 둑을 지켜내지 못하면 언젠가는 우리끼리 배를 만들어 고립된 신앙생활을 하며 지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분열된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어 대응하는 길밖에 없다. 하나 된 연합기관은 한국교회의 공익과 공공선을 추구해야 한다. 반기독교 세력의 공격과 정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반기독교 사상과 입법 흐름을 감지한다면 누구도 한국교회의 연합을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꼭 내년 봄이나 여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우리가 눈 한번 돌리고 마음만 바꾸면 언제든 한국교회 연합의 봄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연합의 봄을 이루어가자. 아니, 그 눈부신 봄을 빨리 오게 하자. 연합의 꽃이 피어나는 꽃소리를 한국교회의 들판에 들리게 하자.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