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도·동남아시아의 다채로운 음식 문화가 결합해 조화를 이루는 ‘미식의 나라’ 싱가포르. 현지에서 가장 유명한 셰프로 꼽히는 저스틴 퀙(61)이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서울에 왔다. 그가 도전장을 낸 곳은 수많은 직장인과 외국인 여행객, 나들이하는 가족들이 두루 모이는 명동이다.
4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에 자리한 캐주얼 다이닝 ‘저스틴 플레이버 오브 아시아’에서 퀙셰프를 만났다. 그는 미쉐린2스타 셰프이자,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생일만찬을 21년간 전담했다.
화려한 이력을 가진 그가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 옆에 매장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고층의 고급 식당과 저층의 서민 식당 일을 두루 경험했습니다. 결국 요리사는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죠. 음식의 퀄리티는 높이되 낮은 가격에 선보이고 싶어요. ‘대중적인 하이퀄리티’라고 할까요.”
퀙셰프는 분주히 주방에서 음식을 나르며 손님을 맞았다. “한국에는 진정한 싱가포르 음식이 없어요. 싱가포르의 제 식당에 한국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에 싱가포르의 맛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특히 새로운 맛을 원하는 젊은 손님들을 사로잡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한국에 먼저 버거전문점을 오픈한 고든 램지도 한국이 좋은 곳이라고 추천했죠.”
싱가포르의 향을 가득 담은 이 식당의 대표 메뉴인 면 요리 ‘락사’, 닭 꼬치구이 ‘사태’, 삼치살로 만든 ‘피시커리’, 볶음밥 ‘나시고렝’, 칵테일 ‘슬링’의 가격은 1만~2만원대다. 요즘 식당 물가를 감안하면 크게 부담되지 않는 수준이다. 이 외에도 총 20여가지의 프렌치·아시안 퓨전 스타일의 싱가포르 요리를 선보인다.
맛의 핵심인 소스류는 싱가포르에서 공수했다. 생선과 해산물, 육류는 질 좋은 국내산으로 대체했다. “한국에 식당을 오픈하기란 쉽지 않았어요. 사계절이 있는 한국과 달리 열대 지역인 싱가포르의 식자재를 수급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식당에서는 에릭 테오 주한 싱가포르 대사를 만났다. 퀙셰프의 음식을 맛본 그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싱가포르의 맛을 그대로 구현해냈습니다. 모든 음식이 맛있었지만 한 가지를 꼽으라면 ‘락사’를 추천합니다.”
퀙셰프를 한국으로 인도한 이는 롯데백화점 조영욱 치프바이어다. 그는 10개월간 직접 싱가포르에 퀙셰프를 찾아가 설득하는 등 노력한 끝에 싱가포르 현지 맛과 분위기를 그대로 구현해냈다. 매장에서 만난 그는 정장이 아닌 셰프복을 입고 주방과 홀을 분주하게 누볐다. “식품 매장을 고급화하는 전략에 맞춰 어떤 브랜드를 가져오는게 좋을지 고민하던 차에 퀙셰프를 알게 됐어요. 퀙셰프는 중국과 대만에서도 식당을 운영한 베테랑이었지만 코로나19로 매장을 정리해온 터라 섭외가 쉽지 않았죠. 끈질긴 구애 끝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고, 취중진담을 주고 받으며 유대를 쌓았습니다. 퀙셰프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하게 돼 기쁩니다.”
퀙셰프의 한국행에는 한국인인 아내의 역할도 컸다. 두 사람은 지난 7월부터 직접 한국에 입국해 본격 오픈 준비에 나섰다. 퀙셰프는 아내가 없었다면 한국에 식당을 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은퇴를 생각할 나이지만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어요. 서울에서의 이번 도전은 아마도 제 마지막 모험이 될 겁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