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운 칼럼] 이재명 대표 측근의 대리 선고

입력 2023-12-06 04:20

이 대표 최측근 김용 법정구속
대선 경선자금 6억원 받아
김씨 개인 뇌물은 7000만원

이 대표 알았다면 법적 책임
몰랐다면 측근만 덤터기
진실 알려면 이 대표 조사해야

정치자금 배달사고는 무죄
선거브로커 양심선언 늘까

불법 정치자금 등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1심 판결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리선고나 마찬가지다. 김 전 부원장이 받은 정치자금은 이 대표의 대선 경선을 위한 돈이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돈을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이 대표의 정치자금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판결문에는 이 사건으로 기소되지 않은 이 대표의 이름이 피고인인 김 전 부원장의 이름보다 더 많이 등장한다.

김 전 부원장의 혐의는 정치자금법 위반과 뇌물수수 두 가지다. 이중 재판부가 유죄로 판단한 정치자금 6억원은 모두 이 대표의 선거자금 명목이었다. 이 대표의 경선캠프 총괄부본부장이었던 김 전 부원장은 대장동 일당에게 ‘호남향우회와 직능단체 등 조직 관리에 돈이 너무 든다’며 20억원을 요구한 뒤 6억원을 받았다. 이 대표가 2021년 중앙선관위에 신고한 경선 후원금은 25억5366만원이었다. 김 전 부원장이 받은 6억원은 선관위에 신고되지 않은 불법 자금이다.

이 대표가 김 전 부원장에게 정치자금 모금을 지시했거나 사후 보고를 받았는지, 알고도 묵인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대표는 그동안 불법 자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김 전 부원장이 받은 6억원을 이 대표가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대표와 김 전 부원장의 특별한 관계를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렵다. 김 전 부원장은 이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 성남시의원을 두 차례 지내면서 이 대표의 측근으로 활동했고 이 대표와 십수년간 정치적 행보를 같이했다. 이 대표가 “정치적 동지이자 분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다. 구속기소 된 정진상 전 민주당 정무조정실장과 더불어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김 전 부원장이 독단적으로 자금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돈을 준 남욱 변호사는 이 대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야 가능한 내용의 청탁을 했다. 남 변호사는 안양시 탄약고 부대 이전 사업과 부동산신탁회사 설립 허가 등에 편의를 봐 달라고 요청했다. 김 전 부원장은 남 변호사의 요청을 수락했다는데 이 대표의 승인 없이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다.

이 대표가 김 전 부원장의 금품수수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대표가 몰랐다면 김 전 부원장 혼자 뒤집어 써야 하는데 만일 그렇다면 불법 정치자금의 실질적인 수혜자는 빠져나가고 측근이나 하수인만 처벌받게 되는 꼴이다. 이런 의혹들은 이 대표에 대한 조사 없이 해소되지 않는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정치자금을 받았더라도 돈을 받은 사람이 단순 전달자의 역할을 했거나 돈의 분배에 대한 재량이 없다면 처벌받지 않는다. 정치자금 공여죄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은 남 변호사와 달리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정민용 변호사가 각각 무죄를 선고받은 이유다.

김 전 부원장이 책임져야 할 혐의 중 이 대표와 무관한 개인 비리는 뇌물 7000만원이다. 2013년 4월 대장동사업 추진을 위한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가 성남시의회에서 통과된 이후 받았다. 당시 성남시의회 도시건설위원회 소속이었던 김 전 부원장의 직무대가성이 인정돼 뇌물로 판정받았다. 김 전 부원장이 오롯이 책임져야 할 돈은 뇌물 7000만원인데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김 전 부원장이 성남시의원 의 임기가 종료되기 직전인 2014년 4월 받은 1억원에 대해서는 검찰과 재판부의 시각이 달랐다. 검찰은 이 돈을 김 전 부원장의 개인 뇌물이라고 기소했지만 재판부는 이 대표의 정치자금이라고 판단했다. 정치자금이라면 공소시효(7년)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배달사고는 정치자금법상 처벌하지 못한다는 법리다. 불법 정치자금은 실제 전달되어야 처벌할 수 있을 뿐 미수에 그친 행위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유 전 본부장이 중간에 빼돌린 1억원, 유 전 본부장과 정 변호사가 나눠 가진 4700만원은 각각 김 전 부원장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판단을 받았다. 정치자금 배달사고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하니 배달사고에 진심인 선거브로커들이 늘어날 수 있겠다. 어쩌면 양심선언 하려는 사람들이 용기를 얻을 수도 있겠다.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