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사진) SK그룹 회장은 미·중 갈등으로 글로벌 시장 블록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에 대응하는 ‘한·일 경제공동체’ 구상을 설파했다. 에너지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분야부터 시작해 더 많은 영역으로 통합을 확대하고 다른 아시아 국가로 확장해 궁극적으로 유럽연합(EU)에 버금가는 제4의 경제블록을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회장은 4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미들버그에서 최종현학술원이 개최한 ‘2023 트랜스퍼시픽다이얼로그(TPD)’ 포럼 기조연설에서 “사업가로서 나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을 목격했고 그것은 실제로 시장을 분할하고 있다”며 “시장 구획화는 비즈니스와 경제에 또 다른 도전”이라고 밝혔다. 이어 “세계무역기구(WTO) 시스템에서 한국이나 일본은 실제로 많은 이익을 얻었지만 더는 혜택을 누릴 수 없다”며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중국은 에너지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공급망 전 분야에서 강력한 경쟁자”라면서 “한국과 일본은 경제적으로 실질적 경쟁자가 아니며 호혜적 관계 형성이 가능하다. 공급망 분야에서 서로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 노동력 부족, 낮은 성장률 등 양국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를 지목하며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현재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수출 중심 모델은 효력을 잃었다”며 “다른 방식을 마련해야 하고 한·일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가 단일시장, 강력한 경제공동체하에 있으면 실제로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양국 간 감정적 갈등에 대해선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한꺼번에 풀어낼 방법이 별로 없다. 항상 내가 좋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지 않으냐”며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선 내가 좀 싫은 것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도쿄 포럼에서 (경제공동체 구상에 대한) 많은 지지를 얻었다. 일본도 지금은 다른 해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