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 캡’ 불합리… 판사도 성과별 인센티브·불이익 줘야”

입력 2023-12-05 04:07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린 4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법관 대표자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 법관대표회의는 법관의 SNS 사용과 관련해 ‘공정성에 의심을 불러일으킬 외관을 만드는 것은 유의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고양=최현규 기자

사법부의 당면 과제인 재판 지연과 관련해 민간 로펌처럼 판사 업무량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성과평가에 따라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는 법원 내부 연구기관의 제언이 나왔다. 한 달 선고건수 상한을 9건으로 제한하는 이른바 ‘3·3·3 캡’ 관행은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는 쓴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과 대한변호사협회는 4일 대법원 대강당에서 ‘재판 장기화와 그 해법’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영창 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고법판사)은 “해외 법원보다 사건 수 대비 판사 수가 적은 것을 고려하면 한국 판사들은 슈퍼맨처럼 일을 처리하고 있다”면서도 “모든 통계가 재판 장기화를 가리키고 있는 것도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특히 적정 선고건수와 관련된 ‘3·3·3 캡’ 관행에 대해 “산정 근거를 알 수 없고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3·3·3 캡’은 서울 소재 법원 민사합의부에서 매달 판결문을 주 3건씩 3주 동안 총 9건을 작성하고 마지막 한 주는 쉬어가는 관행을 지칭한다. 이 위원은 “양측이 다투지만 쉬운 사건 3건이면 너무 적은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과거처럼 4주 동안 주 4건 이상씩 총 16건 이상을 처리하기 위해 야간·휴일 근무를 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찬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종합토론에서 “2022년 3·3·3 캡을 철저히 지키는 기업전담부에 들어갔는데 첫 재판에 들어갔을 때 사건 당사자들이 선고를 요구하며 보내던 경멸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며 “특별한 이유 없이 재개·연기되는 사건이 많아 부끄러웠고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배석판사들에게 일주일에 3건 이상 선고하자고 설득할 재주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은 “법관들이 로펌처럼 (근무시간을 기록하는) 타임시트를 써서 판결문 작성, 재판에 몇 분을 보냈는지 기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객관적 분석이 되면 효율적 법관 배치와 적정 처리건수 제시, 국회에 법관 증원을 요구할 근거, 공정한 업무 평가 등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재판 장기화를 개선하려면 법관 증원과 인사제도 개편 등 대책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위원은 현재 고등부장 승진제가 폐지된 상태지만 적어도 성과에 따른 이익·불이익 부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성과가 좋으면 인사이동, 사무분담 우선권, 해외연수 기회, 성과급 상향 등 인센티브를 주고 성과가 나쁘면 반대로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도 재판 지연 대책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한 법관은 “판사도 건강도 챙기고 가정도 챙겨야 하지 않겠느냐”며 “지금도 집에 못 가고 야근하고, 가정에서는 쓸모없는 존재가 돼 있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선 논란이 됐던 법관의 SNS 사용과 관련해 ‘공정성에 의심을 불러일으킬 외관을 만드는 건 유의해야 한다’는 의안을 의결했다.

신지호 이형민 기자 p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