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무역 140억 달러 흑자 전망… 폴리코노미가 최대 변수”

입력 2023-12-05 04:02 수정 2023-12-05 04:02
한국무역협회와 국민일보가 ‘제60회 무역의 날’을 기념해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개최한 좌담회에서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오른쪽 가운데)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권현구 기자

올해 수출 부진의 터널을 힘겹게 통과한 한국 무역이 내년에는 흑자 전환을 노린다. 발목을 잡는 최대 변수는 정치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폴리코노미’(정치가 경제를 휘두르는 현상)다. 내년 세계 40여개국이 크고작은 선거를 치른다. 국내총생산(GDP)으로 따지면 세계의 42%, 머릿수로 셈하면 글로벌 전체 인구의 41%가 투표권을 행사하는 해다.

한국무역협회와 국민일보는 12월5일 ‘제60회 무역의 날’을 맞아 ‘팬데믹 이후 한국 무역의 성과와 2024년 과제’를 주제로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좌담회를 열었다.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공군승 성림첨단산업 대표이사, 권석균 애터미 전무가 참석했다. 사회는 노석철 국민일보 논설위원이 맡았다.

사회=노석철 논설위원

-참 어려웠습니다. 올 한 해 한국 무역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정만기 부회장=전체적으로 볼 때 올 상반기 굉장히 어려웠지만 하반기 들어, 특히 10월 넘어가면서 수출이 플러스(+) 전환했습니다. 상반기 수출 부진의 결정적 요인은 정보기술(IT)발(發) 수요 감소로 파악됩니다. 반도체 등 5대 IT 품목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수출 감소액이 461억 달러에 달해 총 수출 감소액(603억 달러)의 76.4%에 달했습니다. 수출 단가가 많이 오른 자동차 산업이 하방 압력을 뒷받침했습니다.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수출 규모만 놓고 보면 중개무역하는 네덜란드를 빼고 자국 산업 기반을 가지고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는 나라로는 5위권에 한국이 든다고 봅니다. 어려운 여건에서 지난 10월부터 수출 증가율이 플러스로 돌아선 것은 내년 턴어라운드에 대한 시그널입니다. 우리 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기존의 60여개 국가를 포함해 100여개 통상 네트워킹을 구축하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 중입니다. 특히 중동과의 협력 강화를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 산업 현장에서 느끼는 바는 다를 것 같습니다.

△공군승 성림첨단산업 대표=지난해 대비 올해 실적이 40% 빠졌습니다. 그래도 웃을 수 있는 건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희토류 영구자석을 만드는 회사라는 자부심 덕분입니다. 이 시장은 중국이 91% 가까이 점하고 있고 일본 기업이 3개 정도 있습니다. 전기자동차 시장이 ‘숨고르기’하는 시간이라지만 앞으로 시장 자체는 커질 걸로 봅니다.

△권석균 전무=저희는 화장품이나 건강식품 가지고 해외 27개 법인과 58개국에 진출해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조세 저항이 센 중동 국가 진출을 이번 정부가 신경 쓴다고 하니 기대합니다.

-내년 전망도 녹록지 않습니다.

△정 부회장=내년 수출은 전년 대비 7.9% 증가한 6800억 달러, 수입은 3.3% 증가한 6660억 달러 내외를 달성할 것으로 무역협회에서 추정합니다. 무역수지는 140억 달러 흑자를 전망합니다. 침체에서 많이 벗어날 걸로 보는 것이죠. 다만 장기적인 구조적 추세에서 볼 때 우려 요인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세계 교역 증가율이 7%였는데 우리는 3.6%에 불과했습니다. 수출시장 점유율은 2017년 3.23% 정점을 찍은 뒤 올 상반기 2.59%로 추락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으로 회귀한 것인데 내년은 턴어라운드하는 기회가 올 걸로 봅니다.

-내년에는 세계적으로 40여개국에서 정치 이벤트가 있던데요.

△안 본부장=맞습니다. 내년에는 독특하게 불안한 정치 상황이 집중돼 있습니다. 내년 경기가 좋아진다는 가정은 통상 측면에 우려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지정학 리스크가 큰 변수입니다. 내년에 굉장히 많은 선거가 있습니다. 1월 대만 총통 선거부터 인도네시아, 러시아, 영국, 미국, 유럽의회까지 모든 국가의 정치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우리를 포함해 1% 포인트도 안 되는 표 차이로 정권이 갈리는 정치 극단화 현상이 비일비재합니다. 예를 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친환경을 어떻게 뒤집을지 모릅니다.

△이시욱 원장=관련해서 3가지 키워드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선 올해에 이어 고물가·고금리가 이어질 가능성 높습니다. 지정학 스트레스가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거란 얘기죠. 또 ‘피크 차이나’(Peak China)가 실제로 지난 건지 아닌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은 폴리코노미입니다. 정치가 경제에 영향을 많이 주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종합적으로 올해보다 대외 여건만 놓고 보면 내년이 더 안 좋을 것 같습니다.

-미·중 무역전쟁 격화 속 공급망 재편이 이슈입니다.

△이 원장=공급망 재편은 세계적 흐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 단순하게 관세 장벽 위주로 시작했다면 이후 행정명령 등 보다 강력하면서도 외연을 넓혀 공급망을 타격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인적 교류일 겁니다. 미국이 주변 국가와 협력해 중국을 압박하는 형태는 이어질 겁니다. 상품에서 투자, 인력 등 노동과 환경을 연계한 공급망 이슈는 지속됩니다.

-마지막으로 기업이 정부에 바라는 점 한마디 해주세요.

△공 대표·권 전무=해외에서 통하는 국가표준 정립과 환경 관련 규제 완화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에 대한 자부심, 중국을 탈피해 핵심 광물을 확보해 공급망을 받치려는 기업의 노력을 지켜봤으면 합니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