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63) 회장이 SK그룹 최고경영자(CEO) 협의체인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수펙스) 의장에 사촌 동생인 최창원(59·사진)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앉힌다. 최 부회장은 수차례 고사한 끝에 수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직인 조대식 의장과 함께 최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2인자 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일제히 물러난다.
4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은 5일 SK㈜를 시작으로 주요 계열사에서 잇따라 이사회를 열어 최고경영진 인사안을 결의하고 오는 7일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인사의 핵심은 2017년부터 수펙스를 이끌어온 조 의장이 물러나고 최 부회장이 의장을 맡게 된다는 점이다. 2013년 수펙스 출범 뒤 의장을 최 회장 오너 일가가 맡는 건 처음이다. 수펙스는 계열사의 중장기 사업 방향을 결정하는 최고 협의 기구다. 초대 김창근 전 의장과 조 의장은 최 회장의 최측근이긴 했으나 가족은 아니었다.
SK그룹 안팎에서는 최 부회장을 두고 ‘그룹의 브레인’ ‘똑똑한 경영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964년생인 그는 SK 창업주인 고(故) 최종건 회장의 삼남이다. 최종건 회장의 동생인 최종현 선대회장의 장남 최 회장과는 사촌 형제 사이다. 최 회장의 친동생인 최재원(60) SK㈜·SK온 수석부회장과는 한 살 차이다.
그러나 재계에선 전문경영인 체제의 모범 사례로 꼽혀온 SK그룹이 하루아침에 가족 중심 경영으로 회귀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인사안을 두고 재계의 한 원로는 “전문경영인 강화라는 시대 흐름을 역행하는 족벌 경영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의 2인자 그룹이 물갈이되는 점도 이런 우려를 증폭시킨다. 조 의장과 장동현 SK㈜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이번에 모두 옷을 벗는다. 후임은 50대 CEO로 채워진다. SK하이닉스는 곽노정(58) 대표 단독 체제로 바뀌고 SK㈜ 대표엔 장용호(59) SK실트론 사장이 유력하다. SK이노베이션 대표엔 박상규(59) SK엔무브 사장이 거론된다.
최 수석부회장과 최 부회장의 후계 경쟁에는 불이 붙겠지만, 최 회장으로썬 사촌 동생과 ‘불안한 동거’를 시작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SK그룹 관계자는 “수펙스에서 CEO를 추천하던 예전과 달리 현재는 각 계열사 이사회가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수펙스는 지원조직일 뿐 힘이 없다”며 “이사회 중심으로 경영을 한다는 최 회장의 거버넌스 스토리에는 변화가 없다”고 전했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