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는 특별한 은퇴식이 열렸다. 음주운전 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은 제주유나이티드 소속 골키퍼였던 유연수(25) 선수가 인생의 절반 이상을 누볐던 필드와 작별을 고하는 자리였다. 프로데뷔한 지 3년 만이었다.
유씨는 지난해 10월 서귀포시 표선면의 사거리에서 팀 동료와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술을 마시고 차를 몰던 30대 남성에 의해 차량을 들이받히는 사고를 당했다. 함께 타고 있던 다른 동료들은 타박상에 그쳤지만 유씨는 이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하루의 절반을 재활에 매진하고 있는 그를 지난 1일 서울 강북구 국립재활원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유씨는 회색 후드티를 입고 휠체어를 탄 채 모습을 드러냈다. 오전·오후 재활을 마친 직후였다. 192㎝의 장신인 그에게 휠체어는 너무 작게 보였다.
그는 사고 당시를 설명하면서 “새벽이어서 자던 중이었는데 정신이 들고 보니 차가 뒤집혀 있었어요. 주변에서 빨리 나오라는 소리가 들려서 나가려는데 다리가 안 움직이더라고요. 억지로 힘을 줘서 탈출하긴 했는데 사실 움직이면 안 됐던 거죠.”
병원으로 급히 이송돼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하반신 신경이 크게 손상된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1~3번 경추가 골절됐고, 흉추도 두 군데가 골절되는 큰 부상을 입어 인공척추를 넣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유씨는 전복된 차량에서 나오자마자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부터 터져나왔다고 했다. 그는 “장애를 떠나 살아 숨을 쉬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하나님의 은혜”라며 “사고 이후 하나님만 더 의지하게 되고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장애인 스포츠 운동선수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배경에는 신앙을 빼놓을 수 없다.
“선수시절에는 축구밖에 모르고 살았었는데, 생각보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더라고요. 하나님이 인도해주신다고 생각하니 조급함도 내려놓게 되고 마음이 편해요. 제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생각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려고요.”
물론 하나님을 원망도 했던 그였다. “왜 하필 나냐고, 왜 나여야만 했냐고 원망 섞인 기도도 많이 했죠. 진짜 힘들게 운동해서 여기까지 왔거든요. 근데 나중에는 회개를 하고 있더라고요.”
현재 유씨는 아직까지 가해자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민·형사 재판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의 팬들은 국민청원을 올리는 등 해당 사건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유씨는 낙담 대신 빌립보서 4장 13절의 말씀을 붙잡았다. “패럴림픽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신앙도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싶어요.”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