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우리는 누군가의 행복이다

입력 2023-12-06 04:07

기후위기, 전쟁과 바이러스, 경기침체, 잔혹 범죄. 지금 이 순간에도 공들여 일궈온 일상을 뒤흔드는 불온한 사건들에 세상이 떠들썩하다. 운 좋게 비껴간 불행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는지. 비단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재난과 비극에 작은 행복조차도 잎을 틔우기 쉽지 않다. 도덕의 자리를 꿰찬 배금주의와 법률 만능주의가 팽배한 시대는 날 선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여기다 먹구름을 드리우는 사건들까지 연일 이어지니 보통의 날들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어떤 때는 비정한 사회에서 애써 온기를 찾아내 글로 쓰며 얼어붙는 마음을 녹이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게 국어사전에서 가장 이질적인 단어를 꼽으라면 그건 ‘행복’이다. 행복을 적극적으로 사고한 적이 없고 기분이 좋거나 평온해도 이를 행복과 연관 짓지 않았다. 누군가 행복하냐 물으면 “별 탈 없이 지내니 감사하지” 하며 회피하듯 에둘러 대답했다. 그 누구도 행복을 강제할 수 없지만, 왠지 행복해야 한다고 부추기는 기분이 들었다.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예정에 없던 나의 발걸음을 반기는 외할머니의 눈빛이었다. 배고프단 말 한마디로 얻어낸 밥상과 싹싹 비운 밥그릇에 남은 엄마의 보람을 느끼고,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전화에 고맙다며 안도하는 목소리를 듣고서였다. 나에게 국한했던 폐곡선을 벗어나 그들의 행복을 엿보니 그 안에 내가 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행복이었다. 각박한 세상살이를 버티게 하는 그들의 행복이 나라는 것에 대한 감사함.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그저 내가 나를 돌보며 안녕한 것만으로도 누군가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에서 받는 위안. 이 사실은 스스로 일군 행복과는 다른 형태로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행복을 말하는 책과 노랫말을 다시 음미해본다. 이제는 누군가 내게 행복하냐 묻는다면 미소 지으며 말할 수 있다. ‘응, 내가 누군가의 행복이라서 행복해.’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