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투자자 A씨는 올해 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명 핀플루언서(금융 분야 인플루언서)가 운영한다는 단체 채팅방에 초대를 받았다. 채팅방에는 이미 120여명이 들어와 있었다. 채팅방 운영진은 홍콩 주식 매수를 추천하며 매매 내역이 담긴 화면을 찍어 인증하도록 했다. 주가는 그들의 말처럼 치솟았다. 하지만 어느 날 예고 없이 주가는 폭락했고 채팅방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유명 핀플루언서도 아니었다. 사진을 도용해 사칭한 것이었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유명 핀플루언서를 사칭한 이들이 홍콩 주식을 사도록 유도한 뒤 폭락시키는 불공정거래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이들이 추천한 홍콩 주식은 지신(ZHIXIN)그룹과 굉기(WAN KEI)그룹 등이다. 이들은 외국계 투자은행(IB)인 JP모건이 해당 종목을 매수할 예정이라는 등의 내용으로 투자자들을 현혹해 매수를 유도한 뒤 주가가 오르면 미리 사뒀던 주식을 팔아 치운 것으로 보인다. 해당 채팅방에 있었던 한 투자자는 “초반에 수익을 얻으면서 이들의 말에 속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는 실제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국내 투자자가 가장 많이 산 홍콩 종목은 지신그룹으로, 5242만달러(약 680억원)를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굉기그룹도 997만달러(약 129억원) 어치를 사들여 순매수 4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부동산 관련 사업을 하는 지신그룹과 굉기그룹은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한 번도 다루지 않은 종목이다. 국내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도 않다. 더구나 지신그룹의 시가총액은 1700억원, 굉기그룹은 21억원 수준이다. 적은 돈으로도 주가를 조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들 종목은 특별한 이유 없이 주가가 올랐다가 2~3일 안에 폭락하며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신그룹의 경우 6월 23일 종가 기준 주당 10.10홍콩달러까지 올랐지만 7월과 8월, 11월 세 차례 크게 하락하며 이날 기준 1.36홍콩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문제는 국내 금융당국이 이들을 막을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해외에 거점을 둔 것으로 추정되는 사기 세력들이 해외 거래소에 상장된 종목으로 사기를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국내 주식에 대해서만 권한을 갖고 조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감독 사각지대인 셈이다. 경찰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해 수사를 요청하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해결책이라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