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다사사회

입력 2023-12-04 04:07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일본
사망자 급증 단계에 대비
한국은 무엇을 배워야 하나

메타버스가 세상을 집어삼킬 듯 몸집을 크게 불렸던 2년 전 이때쯤, 해외의 이용 사례를 알아보기 위해 일본의 한 소프트웨어 업체와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무심코 흘려넘겼던 말을 뒤늦게 이해했다. 디지털 추모 공간으로 ‘메타버스 납골당’을 개발하던 이 업체의 홍보 담당자는 당시 이메일에 자신의 회사를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는 ‘다사사회(多死社會)’에 대비해 20년 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다사사회’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사망자 수가 늘어나는 시기’를 설명한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뜻을 조금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지난달 23일 일본 홋카이도 방송사 HBC에서 지역 내 화장장 이용량 증가를 주제로 보도된 기사를 접한 뒤였다.

삿포로시는 관내 2곳뿐인 화장장이 앞으로 포화 상태에 놓일 가능성에 대비해 시민의 견학을 지원하고 있다. 시민에게 화장장 운영 실태를 직접 보여주고 체감하게 할 목적에서다. 시는 지난 12년간 140% 증가한 관내 사망자의 화장 건수가 앞으로 6년 뒤인 2029년부터 한계치를 초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 보건 담당 공무원은 HBC에 “이대로 가면 시민들이 화장장 앞에서 며칠씩 대기할 수도 있다. 앞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일이라고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HBC는 기사 마지막에 “다사사회는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일본은 2005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인구 비중에서 20% 이상이 65세 이상)에 진입한 국가다. 일본에서 다사사회란 단순히 ‘사망자 수가 늘어나는 시기’를 뜻하는 말이 아닌, 초고령사회의 다음 단계로 ‘사망자의 순간적인 급증에 따라 발생하는 여러 사회 문제를 겪게 되는 시기’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를 돌파하고 있는 일본이 아직 세계에서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그다음 단계를 준비하면서 만든 개념이 바로 다사사회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15~19년 뒤인 2038~2042년 다사사회에 도달하고, 그 시기 사망자 수가 연간 168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는 “다사사회에 수도권인 도쿄, 지바, 사이타마, 가나가와에서 유족이 고인의 화장을 위해 7~10일씩 기다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사사회에서 발생할 문제를 놓고 지금까지는 ‘화장장 포화’ 정도가 거론된다. 하지만 논의를 거듭할수록 암담한 미래상만 펼쳐진다. 고인의 유산 상속 절차가 특정 시기에 집중돼 행정 금융 시스템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병원·장례식장·주거지에 수일씩 방치된 시신이 보건을 위협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2년 전 이메일을 주고받은 일본 소프트웨어 업체의 ‘메타버스 납골당’은 고인의 생전 목소리와 사진을 데이터로 변환하고 디지털상에 추모 공간을 마련하는 서비스다. 다사사회에서 ‘메타버스 납골당’처럼 망자를 위한 디지털 서비스가 보편화된다면,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효용도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망자의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 쓰일 데이터가 그 시기를 살아갈 사람들에게 쓰고 남은 자원으로 허락될지 단언하기 어렵다.

다행인 것은 한국에 아직 시간이 남았다는 점이다. 일본이 이미 18년간 겪어온 초고령사회는 한국에 도래하지 않았다. 인구 통계상 한국의 초고령사회 진입 시점으로 2026년이 유력하게 지목돼 있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올해를 완주하면 한국의 초고령사회는 2년 앞으로 다가오게 된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일본은 다른 국가 입장에선 참고하기에 좋은 ‘오답 노트’를 제시해 왔다. 1980년대 거품경제 이후 찾아온 ‘잃어버린 30년’이 그랬다. 다사사회를 준비하는 일본의 향후 20여년도 여러 정책적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초고령사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줄 것이다. 그 준비가 이미 시작된 듯하다.

김철오 온라인뉴스부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