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호(63) 정릉교회 목사는 부산의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던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벌써 34년 전 일이다. 은퇴를 앞둔 담임목사와 부목사 세 명이 있던 교회였는데 사역들이 담임목사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한 고뇌가 있었다. 부목사로서 너무 하는 일이 없어 사례비를 받기도 민망할 정도였다고 했다. 막내였던 박 목사는 무슨 용기가 났는지 담임목사에게 건의했다.
“부목사들이 다 젊고 열심히 하는데 이제 사역들을 나눠서 하시면 어떨까요.”
이 일이 있고난 뒤 부목사에게도 사역이 주어지는 듯하다 원래 모습으로 금세 돌아가고 말았다. 그때 그는 ‘담임목사가 된다면 부목회자와 동역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3일 서울 성북구 교회에서 만난 박 목사는 “바람직한 부목사의 자세를 ‘담임목사의 심정으로 목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담임목사들이 있다”면서 “하지만 담임목사도 연약한 인간일 뿐이기에 담임목사와 부목사 모두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4년 정릉교회에 부임한 뒤 부목사들의 자율성을 존중했다. 일 년에 두 차례 정도 전체 회의를 열어 목회 방향을 제시하는 것 외에는 부목사들의 사역을 간섭하지 않고 창조적이며 자발적인 사역을 강조하고 있다. 부목사들과 함께 예수님을 닮아가는 노력을 하게 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담임·부목사 ‘함께’ 성장
4대째 신앙 가정에서 태어난 박 목사는 아버지와 고모부 등 목회자였던 가족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목사의 길을 꿈꿨다. 1980년 장로회신학대에 입학하고 이 대학 신학대학원까지 졸업한 후 교육전도사를 거쳐 91년 서울 동안교회 부목사로 부임했다. 당시 이 교회 담임목사는 김동호 목사였다.
그와 김 목사는 서로 결이 달랐지만 교회 개혁에 대한 목표는 같았다. 행복했던 부목사 생활을 마치고 97년 서울 성은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하던 중 김 목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여러 명의 담임목사가 함께 교회를 섬기는 ‘팀목회’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동안교회를 떠날 무렵에도 팀목회 제의가 한 차례 있었던 터라 다시 그에 대한 비전이 타올랐다.
“담임목회를 잘하던 중 다시 사역지를 옮기는 게 쉬운 결심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팀목회가 한국교회에 좋은 대안이 되고 인식의 전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김 목사님, 오대식 목사님과 함께 동안교회에서 팀목회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2000년 1월 동안교회로 돌아온 그는 그해 9월 높은뜻숭의교회를 분립 개척해 팀목회를 이어가게 됐다. 그러나 팀목회의 한계를 경험하고 4년여 만에 정릉교회의 청빙을 수락했다. 그는 “팀목회의 장점도 많았지만 성도들 성향에 따라 목회자의 선호도가 갈리는 등 단점도 있었다. 연합을 위해선 자신을 내려놓는 마음가짐도 필요했는데 당시엔 그게 많이 어려웠던 것 같다”며 “담임목사들의 팀목회는 정착되지 못했지만 정릉교회에서 부목사와 함께 한 팀이 돼 하나님 나라만 바라보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예수님만을 모범으로 삼고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는 성도들에게도 전했다.
박 목사가 정릉교회에 부임했을 때 이미 교회는 설립 60년이 넘은 전통적인 교회였다. 성도들에게는 형식보다 의미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예배의 본질을 찾기 위해 애썼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강단 위에 있던 의자를 치웠고 장로들만 앉던 전용 좌석을 없앴다.
“중직자들이 강단 위에 앉아 성도들을 내려다보며 예배를 드리는 것이나 성도들이 강단을 보며 ‘나는 언제 저 자리에서 예배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 모두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강단 아래에서도 함께 어울려 동등하게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지역사회 칭찬받는 교회 꿈꿔
‘누구의 권력도 전통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를 통치해야 한다’는 그의 목회관은 정릉교회를 변화시켰다. 19년 동안 정릉교회에서 목회한 그는 지역에 스며드는 누룩과 같은 교회로 만들기로 했다. 지역에 600년이 넘는 고찰이 세 개나 있고 강신무(신내림을 받은 무당)들이 여럿 살며 미신이 성행했던 동네에 세워진 정릉교회는 복음의 깃발을 이 지역에 처음 꽂았다는 자부심으로 주민을 위해 더욱 헌신할 예정이다. 이미 1975년 국내 최초로 경로대학을 세웠고 교회가 운영하는 유치원 역사가 60년을 향해 가는 등 지역을 섬기는 데 앞장서 왔다.
“10여년 전 딸 둘과 함께 노숙하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이라도 따뜻한 곳에서 먹고 자며 교육받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만든 꿈나래아동센터, 불신자들을 위해 시작했던 평생대학 등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시스템적으로 자리 잡고 안주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관심을 주지 않아도 겨자씨 한 알이 자라나듯이 조용히 지역에 영향을 끼치고 결국에 칭찬받는 교회가 되도록 사역할 것입니다.”
글·사진=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