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 불모지’ 영국, 한국 음식에 푹 빠지다

입력 2023-12-03 20:19
영국 런던의 한인마트 ‘오세요’(Oseyo)에서 현지인들이 한국 제품을 손에 들고 쇼핑하고 있다. 평일 오후인데도 현지인 방문객으로 붐볐다.

찬바람이 스미던 11월 어느 오후. 영국 런던 중심가 소호지역의 한 마트는 쇼핑객들로 붐볐다. 오가는 이들이 손에 들고 있는 짐을 보고 있노라니, 봉지마다 빨간색 제품이 필수품처럼 담겨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봉지마다 들어있는 붉은 물건은 ‘신라면’이었다. 이곳은 소호지역의 한인마트 ‘오세요(Oseyo)’였고, 인종과 나이와 성별이 다양한 현지인들이 신라면을 포함해 한국 식품을 잔뜩 사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일 오후였는데도 장을 보는 손님들로 분주했다. 계산대 앞에는 십여명이 줄을 서 있었는데, 한인마트라는 게 무색할 만큼 한국인 쇼핑객은 보이지 않았다. 20~30대로 보이는 여성이 많았지만 남성들도 적지 않게 섞여 있었다.

이곳에서 지난 2월부터 근무한 A씨(25)는 “전체 손님 중 여성의 비율이 조금 높은 것 같기도 한데, 특정 연령대나 성별을 꼽을 수 없을 만큼 남녀노소 다양한 손님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인기제품을 묻는 질문에 A씨는 주저 없이 라면코너로 향했다. 그가 가장 먼저 가리킨 것은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이었다. 이어 농심 ‘신라면’과 ‘짜파게티’도 잘 나간다고 했다.

통계상으로도 식품 시장에서 한류를 주도하는 것은 단연 라면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농림축산식품 수출액은 약 88억3090만달러인데, 그중 라면이 7억6550만달러로 8.7%를 차지한다. 단일 품목으로는 가장 비중이 크다.

가장 인기 있는 코너인 라면 진열대 모습.

라면이 인기의 정점에 있다고 해서 라면만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고추장, 떡볶이 등 ‘너무나 한국적인’ 제품들도 영국 현지인 손님들의 선택을 받았다. 오세요에서 만난 인도계 영국인 애비셱 싱(25)시는 대상 청정원의 고추장 된장과 동서식품의 보리차를 들고 있었다.

한국음식 마니아를 자처하는 싱씨는 “한국인 친구를 알게 되면서 1년 반쯤 전부터 한국 음식에 푹 빠져있다”고 말했다. 그는 까르보불닭볶음면 등 기성품으로 한국 음식을 접하게 됐지만, 이제는 순두부찌개나 짜장면까지 직접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그가 웃으며 열어 보인 가방에는 다른 마트에서 산 한국 술 세 병도 들어있었다.

영국인들이 꼽는 한국 음식의 매력은 ‘매운맛’이다. 스리랑카계 카비타(21)씨는 “다른 아시아 음식과 비교해 한식에서는 매운맛, 단맛, 신맛이 복합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채식주의자인 그에게 채소가 많이 활용된다는 점이 한식의 큰 장점이었다.

이날 카비타씨의 장바구니에는 신라면과 함께 김치, CJ제일제당 ‘비비고 두부’가 담겼다. 그는 “일주일에 최소 한 번씩은 한식을 해 먹는데, 이번 주에는 김치찌개를 해 먹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현지 분위기는 뜨거웠지만 아직 영국이 식품업계 수출의 핵심 지역은 아니다. 국내 식품기업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와 중국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농심의 해외 미출 비중도 미국·중국이 압도적이다. 삼양식품 해외 매출의 75%는 중국·동남아·미주에서 발생한다. 최근까지 유럽은 ‘K푸드 불모지’로 불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최근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는 긍정적으로 풀이된다. 식품기업들이 영국을 포함해 유럽 시장을 적극적으로 넓히려는 이유다. CJ제일제당은 지난달 영국에서 배달 서비스 ‘비비고 투고’를 시작했다. 한 달 동안 런던의 번화가 쇼디치 지역에서 팝업 매장을 열기도 했다.

CJ제일제당의 영국 팝업 매장 반응은 뜨거웠다. 만두·치킨·떡볶이 등을 선보였는데 점심에만 200~250명이 찾으며 만석을 이뤘다. 일주일에 서너 번 찾아오는 단골까지 있었다고 한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특히 ‘코리안 프라이드 치킨’으로 불리는 양념치킨이 인기가 많다”며 “한국에서는 흔히 먹는 고추장 베이스의 양념을 외국인들은 새롭게 느낀다”고 설명했다. K푸드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인기와 함께 식문화에 대한 관심도 동반 상승하는 추세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유럽시장에서도 앞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런던=글·사진 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