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요람이 한국 사회에 가져다줄 미래는 ‘경제 파탄’ ‘국가 멸망’ 등의 참혹한 단어로 요약된다. 출산율 뒷받침 없이 맞는 초고령화 시대에서는 국가 시스템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국가 존폐의 핵심인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다룬다.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은 문어발식 나열에 그쳐 실제 출산율을 높이는데 기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정책 재구조화를 주도하고 있는 홍석철 저고위 상임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차관급)은 지난 30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저출산 핵심은 일·가정 양립”이라며 “저출산이 심화하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곳은 기업이기 때문에, 일·가정 양립이 기업의 뉴노멀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출산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
“앞으로 10년 동안 적극적 생산연령이라 할 수 있는 25~59세 인구가 320만명 감소하고,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483만명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충격요법으로 설명하자면, 부산시 인구만큼의 젊은 인구가 통째로 사라지고, 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증가한다는 뜻이다. 10년 내 건강보험료 등 사회보장지출이 2배 더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 이런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내년 출산율 전망은.
“소폭 반등할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는 혼인율이 3% 가까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돼 내년 합계출산율도 다소 증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3월부터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대대적으로 하겠다고 표명한 영향도 있고, 코로나19 영향에서 벗어나면서 미뤘던 결혼을 하기 시작한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년이 출산율 반등의 원년이 되면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저출산 정책 중 복지 정책과 모호한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청년 일자리’가 저출산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하지만 저출산 문제가 없다고 해서 이 정책을 안 할 것인가. 이걸 저출산 정책으로 분류해서 추진하는 건 적절치 않다. 진정한 저출산 정책은 결혼을 유도하고 아이를 낳도록 유인하는 데 목표를 둔 정책이다. 점점 복지정책이 되어가면서 전문가들도 저출산 정책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상황이 됐다. 수요가 높고 효과성 있는 정책 중심으로 재구조화를 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의 핵심은 무엇인가.
“일·가정 양립이다. 특히 20·30세대는 여성 고용률이 70% 가까이 되고 맞벌이 비율도 상당히 높다. 일·가정 양립이 되지 않으면 저출산을 해결할 수 없다.”
-제도는 있지만 결국 현장 이행력이 떨어지는 게 문제 아닌가.
“기업 참여를 더 유도하려면 가족친화경영을 잘하는 기업에 체감할 수 있는 혜택, 가령 세제 혜택을 늘리거나 정부 사업 입찰 시 평가에 반영하는 방법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 저출산 심화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건 기업이다. 노동 가능 인구가 줄고 (소비) 수요도 줄기 때문이다. 기업이 적극 동참해야 할 가장 큰 이유다.”
-자동 육아휴직 개시 같은 방안이 논의되는데, 여성 고용을 기피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기우라고 생각한다. 남녀가 같이 육아휴직을 쓴다면 여성만 고용을 기피할 이유는 없다. 롯데가 2012년 자동육아휴직제를 도입했는데 2018년부터는 육아휴직 비율이 매년 95%를 넘는다. 그렇다고 롯데가 여성을 덜 뽑는다는 비판이 나온 적 있었나. 특히 중소기업도 가족친화경영을 통해 우수 인재를 영입할 수 있다.”
-현금성 지원 효과가 있다고 보는가.
“효과는 있지만, 그 정책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 어느 순간 현금성 지원이 보편적 지원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효과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차라리 다 현금성 지원으로 바꾸자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정책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 보육료를 현금 지원한다고 하면, 그것만으로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드러나지 않지만, 교사나 시설 지원도 정부가 한다. 현금성 지원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고 앞으로 바뀌어야 한다.”
-2025년이면 한국은 고령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고령화 정책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1000만 노인들의 다양한 수요에 맞는 정책과 서비스를 발굴하는 게 중요하다. 규제 완화를 통해서 민간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의료와 요양, 돌봄의 장벽을 유연하게 낮추고 국민이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위해 경쟁해야 한다. 가격이 아니라, 품질 경쟁을 해야 한다.”
-경쟁 도입으로 보장성이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낮은 질의 서비스를 국민이 누리고 끝내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 정부가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장기요양이나 의료서비스는 고도화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요구를 정부가 다 충족시킬 수 없으니 민간의 역할도 들여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부담을 차등화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돌봄 일자리 처우가 열악해 ‘질 나쁜 일자리’라는 인식이 있다.
“사회 인식이 잘못됐다고 본다. 의료 가격은 높지만 돌봄 서비스 가격은 너무 낮다. 규제를 완화해 가격을 높이고 인력 보완대책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가족케어(가족이 돌보는 대신 수당을 지급)나 노노케어(노인이 노인을 돌봄) 활성화가 필요하다. 외국인 인력 활용도 검토해야겠지만, 기술 활용이 중요하다. 돌봄 종사자가 기술과 연계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유나 차민주 기자 spring@kmib.co.kr